[日本 ‘100년 기업’을 가다]③135년 전통화장품업체 시세이도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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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東京) 주오(中央) 구 시세이도 본사에 최근 가슴 찡한 사연을 담은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부인과 2년여 전 사별했다는 한 고령의 남성이었다. 그는 부인이 앓아 누워 있는 동안에도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시세이도 매장에 들러 여성용 화장품을 사다 줬다고 한다. 이제는 화장품을 쓸 사람이 없지만 매달 습관처럼 발길이 시세이도 매장으로 향한다는 사연이었다. 일본에는 이 남성처럼 시세이도 브랜드에 ‘중독’된 이가 적지 않다. 덕분에 시세이도는 경쟁이 심한 화장품 시장에서도 일본의 미(美)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수십 년째 군림해 오고 있다.》

110년 전 화장수, 아직도 女心 유혹

○ 잘 나가는 시세이도의 콤플렉스

화장품 업계 ‘넘버 2’ 가네보를 도산(2004년)으로 몰아넣은 긴 불황(잃어버린 10년) 속에서도 시세이도는 순탄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올해 초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입사 선호 기업 순위에서는 도요타자동차나 소니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잘 나가는 시세이도에도 오랜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다. 샴푸 린스 시장 ‘만년 4위’라는 점이었다.

시세이도가 이 시장에서 4위를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경쟁업체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았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업체인 유니레버와 P&G, 일본 최강의 생활용품 업체인 가오 등 외형이 시세이도보다 월등하게 큰 기업들이 있었다.

4위라고 누가 흉보지도 않지만 시세이도 스스로 자존심이 이를 용납지 않았다.

○ 동백꽃 안방을 공습하다

2006년 3월 30일 TV를 지켜보던 일본 시청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세이도의 야심작인 ‘쓰바키(TSUBAKI·동백꽃이라는 뜻)’ 샴푸 광고가 안방을 공습한 것.

일본의 ‘국민그룹’인 SMAP가 부르는 노래 ‘디어 우먼(Dear Woman)’을 배경으로 나카마 유키에(仲間由紀惠) 등 톱스타가 6명이나 등장하는 화려함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꽃병을 연상시키는 심홍색 용기(容器)는 이색적이었다. ‘일본 여성은 아름답다’는 광고 문구도 참신했다.

쓰바키의 마케팅을 책임진 스나이덴 후사코 브랜드매니저는 “당시만 해도 기능을 강조하는 문구가 샴푸 광고의 공식처럼 돼 있었다”고 설명한다.

시세이도는 쓰바키 광고에만 연간 50억 엔(약 4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결과는 경이적이었다. 시세이도가 수십 년 숙원이던 샴푸 린스 시장 정상을 밟는 데는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연간 판매액은 180억 엔(약 1440억 원)을 기록했다. 상품이 히트한 것은 둘째 치고 광고 자체가 ‘장안의 화제’였다.

○ 길은 초심(初心) 속에 있었다

단숨에 1위를 낚아챈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1872년 서양식 조제약국으로 문을 연 시세이도는 1897년 화장수 ‘오이데루민’(지금도 팔리는 110년 된 장수 상품)을 내놓으면서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1915년경에는 아예 주력 업종을 약품에서 화장품으로 바꾸고 로고도 새로 정했다. 이때 창업자의 아들이자 유명한 사진 예술가인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사장이 직접 디자인까지 하면서 정한 로고가 바로 동백꽃(쓰바키)이다.

그가 장미나 벚꽃 등 더 화려한 꽃들을 제치고 동백꽃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시세이도의 최고 인기 상품이 ‘향유(香油) 쓰바키’라는 머릿기름이었기 때문이다.

2006년 ‘쓰바키’는 상품 개념과 이름까지 90여 년 전 머릿기름 ‘쓰바키’의 복사판인 셈이다.

○ 서양의 기술에, 동양의 정신

“일본 여성은 아름답다는 메시지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즉 ‘일본’이라는 착안점이 과녁을 명중시킨 것이다.”

상품 및 디자인개발 전문가인 가와시마 요코(川島蓉子) 씨는 저서 ‘시세이도 브랜드’에서 쓰바키의 최대 성공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즉 서구의 아름다움을 맹목적으로 동경하던 일본 여성들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어 가는 시대흐름을 시세이도가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시세이도의 ‘초심’과 맥이 닿는다.

135년이 지난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는 시세이도의 창업정신은 화혼양재(和魂洋才).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처럼 ‘일본(한국, 중국)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접목한다’는 뜻이다.

시세이도 그룹 개요
구분개요
창업연도1872년
설립 당시 주력 업종약국
현재 주력 업종화장품(일본 1위, 세계 4∼6위)
본사 소재지도쿄 도 주오 구
홈페이지www.shiseido.co.jp
종업원 수2만7460명
연간 매출액(연결 기준)6946억 엔(약 5조5568억 원)
대학생 취업인기 순위3위(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
주요 브랜드마키아주(화장품),인터그레이트(화장품),에릭세르 슈페리에(스킨케어),아쿠아라벨(스킨케어),우노(남성화장품),쓰바키(샴푸 린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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