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치솟아도 소비는 제자리…“지갑이 되레 얇아졌어요”

  • 입력 2007년 7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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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증시가 활황이면 증권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가 들썩거렸다. 고급 식당과 술집은 불야성을 이뤘다. 자동차나 고급 가전제품 등 내구 소비재의 판매도 늘면서 연쇄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코스피지수가 2,000에 육박하면서 ‘거품 논란’까지 나오고 있지만 주식 투자자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나 체감경기에서도 주식 등 자산가치가 오르면 소비가 증가하는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양상이다.

○ 코스피 기업공개 한 곳뿐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6일 기준 1072조2160억 원(코스피 965조3720억 원, 코스닥 106조8440억 원). 2003년 말(392조7360억 원)과 비교하면 679조48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증시가 활기를 띠면 주식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면서 그 효과가 경제에 퍼져나간다는 것이 경제학의 상식이다. 또 기업들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해 투자에 나서면서 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온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는 이런 ‘부의 효과’가 실종됐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 감소했다. 2.3% 줄어든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감소세다.

김대수 롯데백화점 본점 남성·스포츠팀장은 “지난해에 비해 신사복 정장 매출이 7∼8%가량 줄었다”며 “주가만 좋을 뿐 유통업체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바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나친 가계부채, 세금이나 교육비, 유류비 등 고정비적 성격의 지출 증가, 기업의 투자의욕 상실이 부의 효과를 상쇄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05년부터 펀드 가입 인구가 늘긴 했지만 직접투자를 하는 개인들은 지난해까지 증시에서 ‘팔자’로 일관했다”며 “2003년부터 주식을 사 모은 외국인과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린 기업들이 강세장에서 주로 이익을 봤다”고 설명했다.

기업 부문에도 원인이 있다.

지난해 상장사들은 6조5620억 원, 올해도 4조8188억 원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12월 결산 상장사가 배당으로 투자자에게 나눠준 돈도 12조4167억 원이나 된다.

반면 코스피에서 기업공개를 한 기업은 삼성카드 한 곳뿐이다.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인 증시가 오히려 돈을 기업에서 빨아들인 셈이다.

○ 일자리 창출과 고정비 부담 축소가 해법

시중은행의 김모(40) 차장과 약사인 아내 신모(39) 씨 부부는 세금을 떼고도 월수입이 평균 800만 원의 고소득 가구다. 작년 말 2000여만 원의 여유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올해 들어 1000만 원 가까운 수익도 냈다.

하지만 이들은 올해 들어 소비를 매월 50만 원씩 줄였다. 작년 말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를 사면서 받은 주택담보대출금 4억2000만 원에 대한 이자 부담 때문이다.

현재 이자만 한 달에 270만 원가량 나가지만 변동금리로 빌리는 바람에 매달 이자가 오르고 있다. 매달 300만 원에 이르는 자녀의 학원비도 큰 부담이어서 다른 곳에 돈 쓰기가 쉽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 소득에서 세금,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연금이나 보험료, 대출이자 등 고정비적 성격의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1년에는 22.1%였지만 올 1분기(1∼3월)에는 33.4%로 늘어났다.

최근 금리 상승도 부채가 많은 가구를 짓누르고 있다. 5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79조2000억 원으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자부담이 연간 2조6000억 원 늘어난다.

사교육비 부담도 크다. 올 1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 244만6000원 가운데 교육비는 34만5000원(14.1%)으로 통계청이 1974년부터 교육비를 조사한 이후 가장 비중이 컸다.

올해 부동산 관련 세금도 6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1조5000억 원가량 증가했고 연초보다 20% 이상 오른 국제유가도 큰 부담이다.

부채가 없으면서 주가 상승으로 재미를 본 고소득층은 국내보다 해외 소비를 늘리고 있다. 올 1분기 해외 소비는 4조70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국내 백화점 매출(4조5000억 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고 가계를 짓누르는 각종 고정비 성격의 부담이 줄어들어야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를 살려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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