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 정권말 너도나도 몸집 불리기

  • 입력 2007년 6월 27일 03시 00분


정부 각 부처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선진국들과는 반대로 현 정부 임기 말 경쟁적으로 조직 확장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부처가 몰려 있는 정부과천청사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부 각 부처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선진국들과는 반대로 현 정부 임기 말 경쟁적으로 조직 확장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부처가 몰려 있는 정부과천청사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현 정부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조직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추진되는 행정부의 ‘몸집 불리기’ 계획은 가뜩이나 노무현 정부에서 급증한 공무원 조직과 인원을 더욱 늘려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한번 커지면 줄이기가 쉽지 않은 공직사회의 특성을 감안할 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큰 정부로의 폭주(暴走)’가 낳을 후유증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 각 부처 조직 확장계획 밀물

정부는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건설교통부의 ‘주거복지본부 개편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이 조직은 기존 2국 14팀 체제에서 다음 달 초부터 3국 17팀으로 확대되고 정원도 117명에서 140명으로 늘어난다.

▶본보 5월 10일자 B1면 참조

건교부 주거복지본부장의 직급은 현행 고위 공무원 ‘다’급(종전의 2급·이사관)에서 ‘가’급(종전 1급·차관보급)으로 높아지며 ‘다’급 고위 공무원인 주택건설기획관 자리도 신설된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통일부 사회문화교류본부에 대북(對北) 지원과 이산가족 업무,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지원 업무 등을 총괄하기 위한 ‘인도 협력단’을 신설하는 방안도 의결됐다. 이에 따라 6개 팀이던 사회문화교류본부는 7개 팀으로 확대 개편됐다.

또 보건복지부는 내년 1월 기초노령연금, 7월 노인 장기요양보험 시행에 맞춰 현재 태스크포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 TF단’과 기존의 노인정책관 소속 2개 팀을 총 2개 국, 6개 팀으로 늘리는 방안을 행정자치부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행자부가 이를 승인하면 현재 19명인 기초노령연금 TF단과 22명인 노인정책관 소속 2개 팀이 각각 20∼30명 규모의 국(局)으로 확대돼 증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인적자원부도 7월 중 ‘인적자원정책본부’를 발족시켜 인적자원정책국을 이 본부에 편입시키는 한편 2개 국을 신설하고 3개 국, 8개 팀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내년 1월 부처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바꾸면서 고용 분야에서 1개 국을 신설하고 기존 국이나 팀을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총 20여 명의 인력을 충원해 1개 본부, 2개 팀과 분쟁 조정을 담당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의 신설을 추진 중이다.

이에 앞서 해양수산부는 4월 말 기존의 해양정책국과 안전관리관실을 통합해 ‘해양정책본부’로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 “정말, 할 일이 늘어서?”

각 부처는 한결같이 조직 확장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건교부는 주거복지본부를 확대한 이유로 “주택정책의 전문성을 높이고, 늘어나는 공공주택공급, 임대주택 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인원 확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건교부가 지난해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주택본부 신설을 추진했지만 “부동산정책 실패 책임부처가 자리 늘리기에만 급급해한다”는 비판에 부닥쳐 무산되자 내부에서 조직을 키우는 ‘우회로’를 선택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예산 규모가 크고 업무량이 많아 조직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통일부 역시 “인도적 분야의 노력을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인적자원정책본부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적인 정책수립을 위한 기구”라며 “부처의 자리 늘리기 차원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각 부처가 현 정부 임기 말을 앞두고 조직개편 방안을 쏟아내는 데 대한 외부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가 현 정부 임기 만료 후 정부조직 개혁, 부처 통합 등을 의식해 일단 ‘몸집 불리기’를 해놓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런 현상은 어느 정부건 임기 말에 어느 정도는 나타났지만 유난히 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역대 정부 중 관료들에게 가장 많이 이용당한 정부일 수 있다”면서 “공무원 조직 확대를 가장 경계해야 할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조직 확대를 방조하면서 공직사회의 고질이 심화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 ‘큰 정부’는 정부개혁의 실패

현 정부 출범 후 공무원 조직은 계속 커졌다.

김대중 정부 말 57만6223명이던 국가공무원(정원 기준)은 지난해 말 59만169명으로 약 4년 만에 1만3946명 늘었다.

더구나 작년 말 국가공무원은 2005년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바뀌면서 공무원 신분을 잃은 2만9756명이 빠진 것이어서 실제로는 4만 명 이상이 증가한 셈이다.

지방 공무원까지 합한 전체 공무원도 2003년 2월 88만5164명에서 지난해 말 93만6158명으로 5만994명 증가했다.

고위 공무원 역시 크게 늘었다. 2002년 말 현재 33개였던 장관급 자리는 지난해 말 현재 40개로 늘었고 같은 기간 차관급 자리는 73개에서 96개로 증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공무원 수는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서 “작은 정부보다는 효율적인 정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정부 규모를 줄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조직을 계속해 늘리는 것은 정부개혁의 후퇴”라며 “‘일을 더 하기 위해 조직을 확대한다’는 논리는 이미 이 시대에는 타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이 늘어나면 ‘존재 이유’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규제가 증가하는 경향이 많다”면서 정부조직 확대가 미칠 부작용을 걱정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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