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알뜰 주부, 그녀는 글로벌쇼핑族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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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주부들은 해외 사이트까지 찾아가 쇼핑을 한다. 홍윤화 씨는 “영어가 불편하고 배송 기간이 긴 단점이 있지만 싼 가격에 물건을 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부지런한 주부들은 해외 사이트까지 찾아가 쇼핑을 한다. 홍윤화 씨는 “영어가 불편하고 배송 기간이 긴 단점이 있지만 싼 가격에 물건을 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구두는 미국 대형마트 ‘타깃’의 창고에 있었다.

“보물찾기 놀이 같다. 뒷동산 나무 밑에 보물 쪽지가 숨어있듯이 지구상 어딘가에 내가 찾는 구두가 있었다. 가격이 ‘착한’ 구두로 말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갭’ ‘폴로’ ‘바나나리퍼블릭’ 등의 상표가 표시된 지도가 펼쳐져 있다.

하룻밤에 수많은 매장을 방문하지만 지치지도 않는다.

홍윤화(30·주부) 씨는 아들 동영(3)을 재운 뒤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을 즐긴다.

쇼핑 기술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품을 하나둘 사들이면서 부쩍 정교해졌다.

아울러 컴퓨터의 ‘즐겨찾기’에 저장해 두는 알뜰쇼핑 사이트도 늘어났다.》

홍 씨는 글로벌 쇼핑에 익숙한 ‘글로벌 소비자’다. 그렇다고 외국 브랜드를 무턱대고 좋아하는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을 끝까지 찾아내는 부지런한 소비자일 뿐이다.

“똑같은 물건을 많게는 50∼80%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 가격, 가격, 가격

지난해 여름 홍 씨는 손자의 샌들을 사주겠다는 시어머니를 따라 백화점에 갔다. 하지만 마음에 두었던 유명 브랜드 샌들은 이미 품절된 상태. 5만5000원이라는 가격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홍 씨는 똑같은 샌들을 아이에게 신겼다. 구입 가격은 약 1만5000원. 미국 대형마트 ‘타깃’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샀다. 마침 할인행사 중이어서 싸게 건졌다.

“백화점에서 아이 옷을 고를 때 마음이 불편했다. 좀 괜찮다 싶으면 셔츠가 5만 원이 넘는다. 브랜드 제품 중에 저렴한 옷은 없을까 항상 궁금했다.”

갭, 폴로, 짐보리, 올드네이비 등 아동복 사이트에는 홍 씨 외에도 많은 한국의 주부들이 찾고 있다.

‘혜린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주부는 올 1월 폴로 사이트에서 오리털 파카를 25달러(약 2만3000원)에 구입한 ‘무용담’을 들려줬다. 125달러에 팔던 것을 25달러에 할인 판매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는 백화점에서 20만 원대에 팔리던 상품이었다.

홍 씨는 아이 옷 중에서도 할인 품목을 골라 1만 원대 제품을 주로 구입한다. 국내 유명 아동복 브랜드보다 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가격 대비 만족감은 더 크다는 것이 홍 씨의 계산.

할인 기간을 노리면 만족감은 더 커진다. 여름과 겨울이 끝날 무렵 큰 할인장이 선다고 홍 씨는 귀띔했다. “연말 세일 때는 70∼80% 할인되는 상품이 많다. 그래서 연말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많은 해외 사이트는 별도의 ‘세일’ 란을 마련해 두고 있다. 홍 씨는 유아복 ‘자니앤드잭’ 사이트에서 일명 ‘우주복’(바지와 상의가 일체형인 옷)을 9.9달러(약 9300원)에 파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시간 모 구매대행 사이트 쇼핑몰에서는 같은 제품이 3만9800원이었다.

○ 구입 경로

굳이 영어까지 해석하면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 장벽은 물론 국제 배송료와 관세도 신경 써야 한다.

수입품에 높은 마진을 붙이던 일부 수입업자들은 홍 씨 같은 부지런한 소비자 때문에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해외 사이트를 대상으로 공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홍 씨는 시행착오 끝에 자신에게 맞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았다.

우선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면 사이트 주소와 제품 모델번호, 제품 사진 등을 별도로 내려받는다. 그 다음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사는 친한 친구에게 고스란히 e메일로 보낸다. 미국에 사는 친구는 각 사이트를 방문해 홍 씨 대신 쇼핑을 한다.

“내가 결제를 하지 않는 것은 일부 사이트는 한국에서 발급된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별도의 할인쿠폰을 활용할 수 있어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물건이 도착하면 친구는 포장지를 다 뜯어내 무게를 줄인 뒤 한꺼번에 포장해 홍 씨에게 보낸다. 국제 배송료는 무게와 부피 중 큰 것을 선택해 요금을 매기기 때문에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홍 씨는 “국제 배송료는 배를 이용하면 2만∼3만 원 나온다. 여러 품목을 한꺼번에 사기 때문에 개당 국제 배송료는 3000∼5000원인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없어도 가능하다.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라는 곳에서 ‘미국 친구’ 역할을 해준다. 결제 업무를 제외하고 ‘미국 친구’ 역할을 하는 곳은 배송 대행업체다. 별도의 대행 수수료가 있는 것이 진짜 친구와 다른 점이다.

○ 다양한 욕구 충족

홍 씨의 남편은 거구다. 키가 180cm가 넘고 체중도 많이 나가 국내엔 맞는 사이즈가 별로 없다. 해외 사이트는 이럴 때 요긴하다. 사이즈가 다양하기 때문. 예컨대 바지는 같은 허리 치수라도 여러 길이의 제품이 있어 편리하다.

글로벌 소비자들은 옷, 장난감, 구두, 비타민, 침구류, 주방용품 등을 주로 산다.

자동차 부품을 해외에서 구입하는 자동차 마니아도 있다. 1992년 생산된 랭글러 지프의 소음기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고, 구한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부담스럽다. 미국 경매 사이트 이베이(www.ebay.com)나 락오토(www.rockauto.co.kr) 같은 구매대행업체를 통해 해외에서 직접 부품을 구입하는 이유다.

글로벌 쇼핑이 증가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국제 소포는 매년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3년 54만1000건이던 국제 소포는 2006년에는 72만9000건으로 35% 늘었다.

명품을 흉내 낸 비슷비슷한 구두 디자인을 싫어하는 홍 씨가 ‘타깃’에서 찾은 구두는 밤색의 ‘아이작 미즈라히’였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이 제품은 국내의 한 구매대행 사이트 쇼핑몰에서 7만 원에 팔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2만 원에 건졌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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