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법률산업 빅뱅]세계시장 게임 룰은 ‘미국법’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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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황중환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황중환 기자
《자유무역협정(FTA)은 ‘통합의 게임’이다. 게임의 승패는 누가 규칙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게임의 규칙은 뭘까. 한미 FTA 협상에서 최대 난제였던 자동차나 쇠고기를 둘러싼 합의가 아니다. 이 게임의 규칙은 424일간 지루했던 FTA 협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세계시장(global market)을 지배해 왔다. 그것은 미국법(영미법)이다. 18, 19세기 서구의 산업자본주의는 기독교라는 다리를 건너 신대륙에 닿았다. 그러나 21세기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글로벌 기업은 미국법을 통해 세계시장을 통합한다. 미국법은 ‘영어’와 ‘달러’를 토대로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미국 글로벌 기업의 창이자 방패다. 더 이상은 ‘정의의 보루’가 아니다.》

본보는 4개월여 동안의 현장 취재와 수십 명에 이르는 국내외 법률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미국법의 배경과 영향력을 살펴봤다. 미국의 노련한 기술과 거대한 몸집, 엄청난 판돈을 비난하고 반대하기 전에 게임의 규칙을 이해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게임에 뛰어들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2일 타결된 한미 FTA 조문은 상당 부분 작성돼 있는 상태다.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올 6월 30일 이전에 모두 공개된다.

협정문은 국문본과 영문본 모두 정본으로 인정된다. 한국이나 미국 어느 쪽도 특별히 유리하지 않다. 공식적으로 FTA는 한국과 미국의 평등한 조약이기 때문이다.

한국 협상단은 협상기간 내내 미국 로펌인 ‘스텝토 앤드 존슨’의 변호사 3명과 ‘샌들러 트래비스 앤드 로젠버그’의 변호사 4명에게서 조언을 받아 왔다.

반면 미국 측 협상단은 우리처럼 한국법에 대한 조언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이후 양국 간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4일 법무부는 “한미 FTA 후속 조치의 하나로 앞으로 형사 절차에서 ‘상업적 규모’ 이상의 지식재산권 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권리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저작권법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 체계에서 지식재산권 침해는 모두 친고죄다. 반면 영미법에서는 친고죄 개념이 없다. 이는 FTA라는 통합의 게임에서 미국법이 두 나라의 법률적 표준으로 관철된 대표적 사례다.

법무부는 ‘상업적 규모’의 기준에 대해선 “우리 실정에 맞게 적절히 수립할 방침이며 앞으로 소규모 침해사건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해 민사 절차로 해결하도록 하고, 크고 중요한 침해사건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번 한미 FTA 타결에 따라 앞으로 저작권 보호 기간이 종전에 저작자 사후 50년이던 것이 70년으로 늘어난다. 제도 시행이 2년 유예되긴 하지만 미국이 1998년 만든 ‘소니보노법’이 한국 시장에 적용되는 것이다.

노동 분야의 공중의견제출제나 환경 분야의 대중참여제 등이 도입되는 것도 미국식 표준에 맞춰 우리의 제도와 법률을 정비해야 하는 사례에 속한다. 한미 FTA 타결로 한국은 최소한 30여 개의 국내 법률을 고쳐야 한다.

통상 전문가들은 FTA를 체결한 두 나라의 ‘게임 규칙’이 동일하다는 것은 법규와 시장의 광범위한 통일을 뜻한다고 말한다. 특정 산업의 수입 개방이나 관세 철폐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동질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심지어 투자 분쟁의 해결 절차까지 공동으로 규정한다.

FTA 등을 통한 세계시장 통합의 이면에는 법률의 산업화, 나아가 법률산업의 세계화와 미국법의 세계시장 지배라는 거대한 물결이 관통하고 있다. ‘제4의 물결’로까지 불리는 글로벌 법률산업의 무한경쟁시대에 한국이 게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미국법의 세계 지배를 떠받치고 있는 △메가로펌 △글로벌 기업의 거대 법무조직 △미국 로스쿨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대비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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