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타결]협상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부 신문 “타결” 오보

  • 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협상이 열린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 마련된 임시 천막 기자실에서 취재진이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비닐 창을 신문지로 가려놓았다. 변영욱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협상이 열린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 마련된 임시 천막 기자실에서 취재진이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비닐 창을 신문지로 가려놓았다. 변영욱 기자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협상은 협상단은 물론 취재기자들로서도 힘든 ‘마라톤 취재’였다.

특히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달 30일 밤부터 협상 타결 발표가 나온 2일까지 나흘간 기자들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거나 때로는 비까지 새는 임시 ‘천막 기자실’에서 협상 결과를 밤새 기다리면서 가슴이 타들어갔다.

양국 협상단이 정한 당초 협상 시한은 31일 오전 7시였다. 전날인 30일 오후 8시 반경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각자 이것만은 국익 플러스 여론 때문에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는 전선을 명확히 한 채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협상 시한 안에 총론적 합의 사실을 먼저 발표한 뒤 남은 쟁점들은 하루빨리 해결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세부사항 협의는 협상 연장이 아니며 일종의 조문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파악된 협상은 좀처럼 진척이 없고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특히 신문은 인쇄 및 배달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 신문 제작 마감시간과, 아침에 독자들이 신문을 읽는 시간에 몇 시간의 시차(時差)가 있다. 마감시간에서의 상황을 그대로 보도할 때 신문이 실제로 배달되는 시점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대한 국익이 걸린 국가 간 협상을 진행 상황보다 앞질러 보도하는 것은 위험했다. 본보 취재기자들은 섣부른 예단(豫斷)이나 추측을 삼가고 마감시간까지 확인된 내용만 담아 기사를 송고했다. 협상이란 것이 99% 합의했더라도 나머지 1%의 이견 때문에 막판에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이날 협상 시한을 넘어 밤새 진행된 협상은 결국 매듭을 짓지 못했다. 31일 오전 7시 반 협상장을 나온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한미 FTA 협상 시한을 2일 오전 1시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타결도 결렬도 아닌 ‘진통 끝의 협상 연장’인 셈이었고 실제로 협상은 이틀 이상 더 계속됐다.

하지만 이날 일부 신문은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것처럼 보도했다. 특히 한 신문은 상당수 지역에 배달된 31일자 신문에 1면 머리기사로 ‘한미 FTA 협상 타결’(일부 지역은 ‘한미 FTA 협상 사실상 타결’)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2일 일부 지방에 배달된 신문에 ‘섣부른 타결 보도…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싣기도 했다.

이날 아침 이 신문을 읽은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핵심 분야 쟁점 조율이 거의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협상이 타결됐다’고 보도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나라의 장래가 걸린 사안에 대해 어떻게 저런 기사를 쓸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일부 미디어 관련 매체는 이날 이 신문의 보도를 ‘대형 오보’라고 지적했다.

한미 양국의 ‘연장 협상’ 과정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일 한미 양국의 연장 협상은 거듭 진통을 겪으며 밤을 넘겨 2일 오후 1시까지 이어지고 오후 4시에야 공식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이날 새벽 배달된 일부 신문의 보도 또한 과하다는 지적이 협상단 사이에서 나왔다.

이번 한미 FTA 협상은 특별한 돌발 변수가 없는 한 타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하지만 ‘천막 기자실’의 현장기자들은 이번 사안의 중요성과 협상 과정의 가변성을 감안해 최대한 신중하게 협상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기자라면 누구나 ‘특종 욕심’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극히 드물지만 그러한 욕심 때문에 오보가 나오기도 한다.

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협상이 타결됐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가능성 차원의 사안을 이미 현실화된 것처럼 보도하는 것 자체가 치명적 오보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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