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팝니다…가전-가구의 새 트렌드 ‘레트로(복고)’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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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지난해 말 태엽을 감아 쓰는 ‘기계식’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최고급 명품(名品) 시계 브랜드들이 수백만, 수천만 원대의 고가(高價) 기계식 시계를 만든 적은 있었지만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에서 기계식 시계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이 시계를 수입 판매하는 ‘갤러리어클락’의 김혜원 과장은 “기계식 시계에 관심 갖는 사람이 늘면서 40만∼50만 원대 제품을 내놨다”며 “기계식 시계가 생소한 젊은 층도 ‘아날로그 감성’을 부각했더니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 수동 카메라, 충전식 라디오, 구형 전화기 인기

‘레트로(retro)’ 바람이 불고 있다. 재(再)유행, 리바이벌을 뜻하는 ‘레트로’는 복고, 복고주의를 대신해서 쓰이면서 최근 유행 트렌드를 주도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식음료, 패션 분야에서 불기 시작한 레트로 열풍은 올해 들어 디지털과 첨단 기술의 장(場)인 가전, 가구업계로 번지는 모습이다.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방식, 현대적인 디자인 대신 복고풍의 투박한 디자인을 내세워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옛것’을 그리워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가전업계에서는 아날로그 수동 카메라와 충전식 라디오, 구형 전화기 등이 ‘레트로 가전’으로 불리면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e마켓플레이스 ‘옥션’에서는 올해 들어 최근까지 수동 필름 카메라가 1만8500대 팔렸다. 2005년 1∼3월(8500대)에 비해 판매량이 2배 이상으로 뛴 것.

부품 불량으로 사진이 뿌옇게 나오는 러시아산 수동 카메라 ‘로모’는 오히려 “사진을 찍으면 옛날 사진처럼 보인다”고 알려지면서 인기 상품이 됐다.

복합전자상가 ‘테크노마트’도 충전식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서 주파수를 맞추는 아날로그 라디오, 미니 컴포넌트 등 구형 음향기기 판매가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었다.

테크노마트 내 대호전자의 임종우 실장은 “레트로 가전은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기본적인 기능 외에 복고풍 고전적인 디자인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기능보다 추억-향수 자극… 신-구세대 모두 반겨

옥션에서 ‘라디오 마니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최상기(38) 씨는 “사람들은 1950, 60년대 옛날 라디오를 사면서 기능적인 면보다는 추억 향수와 같은 감성적인 부분을 먼저 떠올린다”고 설명했다.

옛것을 그리워하는 어른 세대에게는 추억을 심어 줄 수 있고, 신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줄 수 있어 기업으로서는 레트로를 활용한 마케팅이 신·구세대를 모두 공략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부엌가구업체 에넥스는 최근 옛날 한옥 마당에 있었던 평상과 온돌, 창호문 등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부엌 디자인 ‘안채’를 선보였다.

에넥스의 이용한 디자인연구소장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 한옥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따스한 아랫목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시적이고 세련된 디자인보다 한국 전통 부엌의 느낌을 강조했다”며 “기능보다는 복고적인 감성을 자극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찾는 소비 행위는 단순히 추억을 넘어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며 “과거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희소성을 갖게 되면서 아날로그 자체가 디지털 시대에 또 다른 형태의 명품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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