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임원이 된다는 것은… 4인의 저녁식사

  • 입력 2007년 2월 1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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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회사에서 임원 승진과 관련해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조혜성 LG화학 상무, 조화준 KTF 전무, 한현미 아시아나항공 이사, 최인아 제일기획 전무(왼쪽부터). 이들은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의 어려움 등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강병기 기자
각 회사에서 임원 승진과 관련해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조혜성 LG화학 상무, 조화준 KTF 전무, 한현미 아시아나항공 이사, 최인아 제일기획 전무(왼쪽부터). 이들은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의 어려움 등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강병기 기자
■“이 악물고 뛰다보니 임원… 후배들 살빼기보다 체력 키우길”

《“올해는 사실 (임원이 될 것을) 생각도 안 했어요. 여성이 임원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한현미 아시아나항공 이사)

“임원이 된다면 남자 동기 다 되고 나서 나도 되겠거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건 아니었죠.”(조화준 KTF 전무)

직장여성이 승진에 유리한 핵심 부서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유리벽’과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은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커리어 우먼’들이 직장생활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기업의 ‘별’인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에서 ‘희귀한 존재’인 여성 임원 4명이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모였다. KTF 조 전무와 아시아나항공 한 이사, 제일기획 최인아 전무, LG화학 조혜성 상무는 회사가 다르고, 임원 경력도 최근 별을 단 신규 임원부터 임원 7년차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임원 승진과 관련해 각 회사에서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최 전무는 삼성그룹 사상 첫 여성 전무이며 조 상무는 화학업계 최초 여성 임원, 조 전무와 한 이사는 각각 KTF와 아시아나항공의 첫 여성 임원이다. 》

이들은 이날 모임이 첫 만남이었지만 ‘여성 임원’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금방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여성으로서 임원이 되기까지의 어려움과 젊은 직장 여성들에게 해 주는 조언, ‘일하는 엄마’로서의 고충 등을 주제로 2시간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진솔한 대화를 위해 발언자 이름을 익명으로 했다.

○남자 동기와 같이 진급하는 데 13년 걸려

이들은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B 씨는 “(임원 생각을 하지 못한 건) 그만큼 척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참 부장이면 임원을 바라보는데 앞에서 (여성이 임원 되는 걸) 보지도 못했고 또 여자 선배들이 물 먹는 것도 너무 많이 봤어요.”

D 씨도 맞장구를 쳤다.

“샘플이 앞에 있고 없고가 큰 영향을 미치죠. LPGA도 박세리가 가고 나니까 그 뒤에 김미현도 가고 한희원도 갔죠. 없으면 생각조차 안 하게 돼요.”

“선배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결혼하면서 그만두고 출산하면서 그만두고 육아 때문에 그만두고. 각자 중요한 선택을 했겠지만 그러다 보니까 ‘이래서 여자는 뽑으면 안 돼’ 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어요. 그런 것을 여과 없이 저한테 표현을 하더라고요. ‘당신은 얼마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난 돈 버는 게 아니고 회사 다니는 게 목표였어요. 끝까지 다니는 모습 보여 주고 말겠다, 이를 악물고….”(A 씨)

D 씨는 “저희가 차별을 겪다가 그것을 극복한 첫 세대인 것 같아요. 남자 동기들 하고 같이 진급하는 데 13년이 걸렸어요, 다 올라가면 나만 빠져서 혼자 바보가 되고. 하지만 임원 승진은 5년이 빨랐어요”라고 말했다.

A 씨는 “저는 대리는 늦지 않게 달았어요. 시험 봐서 결정했으니까요. 그런데 과장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고과에서도 남자가 우선시되고”라고 했다.

직장에서 ‘유리 천장’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유리 천장이 여러 개가 있는 것 같아요. 부장 될 때 가장 두꺼운 층이 있어요.”(B 씨)

직장생활하면서 당한 성 차별의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참석자들은 “이제 그런 건 너무 진부한 얘기”라며 더는 언급하기를 꺼렸다.

최근 여성 임원이 나오는 것은 여성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D 씨는 그런 면이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 샘플이 필요한데 운 좋게 남은 자가 있고, 능력도 남자에 빠지지 않고, 그렇다면 여자를 올리는 게 더 좋은 효과가 나지 않나 그런 게 있었어요. 직장생활 처음 절반은 여자로서 차별을 당했고 그 뒤에 절반은 덕을 봤다고 생각해요.”

○직장에서는 여자라는 걸 잊고 살아

특히 기혼여성에게 가정과 직장생활 병행은 말처럼 쉽지 않다.

“회사생활하면서 남자와 같이 대우받고 싶으면 당연히 똑같은 강도로 고생해야지요. 직장에서는 여자라는 걸 잊고 사는데 이런 자리가 (여자라는 걸) 자각하게 해 주는 계기가 돼요.”

A 씨는 “저는 아이들 대할 때도 터프하게 대해요. 그래서 우리 애들은 아빠가 둘이죠”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이들은 임원이 되니 좋긴 좋다고 입을 모았다.

A 씨는 “일단 차가 좋아져서 우리 애들이 나를 존경하게 됐어요. 지금은 저에 대해서 자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C 씨는 “제가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해요. 동네 부동산, 백화점 점원, 이런 사람들이 알아봐서 깜짝 놀랐어요”라고 웃었다.

○“여기 오기까지 가족희생 뒤따라”

이들은 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계속 하기가 쉽지 않죠. 일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일을 통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좋고.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A 씨)

D 씨는 “힘들 때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일이 나 혼자 잘먹고 잘살게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이런 가치를 만들어’, 그런 생각이 생겨 제 자신을 잡아줬어요”라고 말했다.

C 씨는 다소 의견이 달랐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도 힘들었어요.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여기까지 왔어요. 친정 부모님과 여태까지 같이 살고 있어요. 시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애가 하나 더 생겨서 시부모님 힘에 부치니까 친정 부모한테 매달렸어요.”

참석자 중 3명은 결혼해서 각각 2명의 자녀가 있고, 한 명은 미혼이다.

A 씨는 “저는 직장생활 유지하는 게 목적이어서 아이 봐 주는 아주머니한테 월급을 다 줬어요. 애들한테는 참 미안하죠”라며 자녀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나타냈다.

B 씨가 “주말에는 애 보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A 씨는 “주말에도 불량스럽게 봤어요. 애가 나한테 정 붙일까봐 ‘울지 마’ 이러면서. 엄마의 정이 뭔지 모르고 자랐죠”라고 대답했다.

특히 이 대목에서 A 씨는 할말이 많은 듯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니까 교사가, 자기도 여자면서 ‘직장 다니는 엄마는 골치가 아프다. 준비물도 제대로 안 챙겨 주고. 협조도 안 하고’ 그런 얘기를 대놓고 해요. 사회가 정말 안 도와줬어요. 회사는 오히려 도와줬는데.”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제일 중요

여성 임원들은 후배 여성 직장인을 위한 충고만큼은 실명을 허락했다.

조혜성 상무는 “일단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일을 못해요. 그 다음이 자세인데 가족의 협조를 얼마나 잘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요, 그들을 잘 설득해서 여러 가지 조화를 잘 이뤄야 합니다. 건강도 중요합니다. 운동해서 스태미나도 길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인아 전무는 “다이어트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조화준 전무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관리자가 돼도 여자들은 자기가 다 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어요. 부하하고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일은 맡겨야 되는데 여자들이 대체로 그걸 못해요. 일을 잘하려고 하는 것 외에 남자와 똑같이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남자들이 직원들한테 ‘이 자식, 저 자식’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요. 나만의 방식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최인아 전무는 감정 조절을 당부했다.

“여자가 자기감정 조절에 덜 익숙해요. 사람이 매일 잘할 수는 없고 사이클이 내려갈 때 감정 훈련이 필요해요. 자기 소양이 발휘되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감정이 널뛰기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제일기획 최인아(46) 전무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4년 제일기획 입사 △2000년 제일기획 제작본부담당 이사 △2007년 제일기획 전무


○ KTF 조화준(50) 전무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93년 KT 입사 △2001년 KTF 재무담당 임원 △2006년 12월 KTF 재무관리부문장


○ LG화학 조혜성(43) 상무

△이화여대 대학원 화학과 졸업 △1989년 LG화학 입사 △2006년 LG화학 기술연구원 CRD연구소 상무


○ 아시아나항공 한현미(47) 이사

△연세대 간호학과 졸업 △1990년 아시아나항공 입사 △2006년 12월 아시아나항공 환경고객부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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