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주택분양시장]80%가 올 목표 절반도 못채워

  • 입력 2006년 9월 8일 03시 00분


서울에 본사를 둔 중견 건설업체인 H건설. 현재 지방에서 1000여 채의 아파트를 분양 중이지만 실적이 좋지 않아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델하우스에는 하루 200여 팀이 다녀가지만 계약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 회사 부동산 개발사업 총괄담당 A 상무는 곳곳에 비어 있는 아파트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지방출장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외환위기 때는 자금이 부족해 주택사업을 못했지만 요즘은 분양물량을 확보해 놓고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어 더 황당합니다.”

주택 분양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달리는 중견 건설업체들의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지방 중소 건설업체들 사이에는 올해 가을을 못 넘기고 부도나는 곳이 속출할 것이라는 ‘괴담(怪談)’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건설업체 부도가 시작되면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업종 특성상 관련 업체들의 연쇄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건설현장 저소득층 일용직 근로자의 생계는 물론이고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 무너지는 아파트 분양시장

본보는 건설업계 위기의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해 6, 7일 이틀간 국내 중견 건설업체 20곳의 개발·분양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올해 아파트 분양목표 대비 8월 말까지의 실적이 50%를 넘은 업체는 4곳에 그쳤다.

실적을 밝힌 19곳의 평균 실적은 33.06%. 이 가운데 4곳은 10% 이하였다. 전혀 실적을 올리지 못한 업체도 있었다.

올해 남은 기간에 대한 전망도 어두웠다. 관련 항목에 응답한 19개 업체 중 58%는 하반기(7∼12월) 주택분양 계획을 목표보다 줄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목표보다 늘리겠다는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전체 20곳 중 40%가 ‘올해 경영성적이 부진하거나 매우 부진하다’고 응답했다. ‘경영성적이 양호하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건설업계 임원들끼리 모이면 분양하기 겁난다는 푸념이 빠지지 않습니다. 분양률이 70%는 돼야 초기 공사비를 댈 수 있는데 수도권을 빼면 분양률이 10%도 안 됩니다. 수도권이라고 아파트 지을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손놓고 있는 거지요.”(K건설 임원)

한화건설 관계자는 “올해 전국적으로 6000여 채를 분양할 예정이었지만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284채를 분양하는 데 그쳤다”고 하소연했다.

○ 지방 분양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일부 지방에서는 분양을 스스로 철회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올해 4월 경북 문경시 모전동 아파트 분양에 나선 C건설사는 343채 중 29채만 분양되자 계약자들에게 계약금을 돌려주고 분양계획을 자진 포기했다. 이 회사는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내년에 다시 분양을 시도할 계획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부산 대구 등 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미분양 주택은 5만5022채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6월(5만7808채) 이후 가장 많다. 개발·분양담당 임원들은 연말 인사를 앞두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Y건설 관계자는 “현금이 돌지 않으니까 경영이 위축되면서 지방업체를 중심으로 유휴 인력을 정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가 벌어질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지방 중소 건설업체 300곳을 조사해 7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올해 7월까지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29.4% 감소했다.

또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지방자치단체에 면허를 반납하고 폐업을 신청한 업체는 3534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69곳)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 정부 부동산정책에 차가운 평가

이처럼 경영실적이 악화된 건설업체들은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차가운 평가를 했다.

본보 설문조사 가운데 ‘8·31 부동산 종합대책’에 대한 평가에서 ‘부작용이 있다’(60%)거나 ‘당초 목표와 달리 부작용이 심각하다’(30%)는 등의 부정적 평가가 90%나 됐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라고 응답한 업체는 1곳(5%)에 불과했고 1곳은 ‘보통’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점수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는 전체의 75%가 60점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이어 60점(15%)과 70점(10%)이 뒤를 이었다.

풍림산업 개발사업본부 권태민 전무는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부동산 정책이 지방 분양시장까지 죽이면서 업체들의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이성근(부동산학·한국부동산정책학회장) 교수는 “정부가 수도권, 지방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무차별적 처방을 쏟아내 부작용이 커졌다”며 “한시적으로 담보대출 기준을 완화하는 등 지방 분양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분양률 높이기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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