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역전의 용사들… 기업은행 전직 지점장 40명 재고용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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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이달 초 기업 컨설팅 매니저로 은행에 재고용된 김진희, 이완수, 최종찬 씨(왼쪽부터)가 한자리에 모여 환하게 웃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박영대  기자
기업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이달 초 기업 컨설팅 매니저로 은행에 재고용된 김진희, 이완수, 최종찬 씨(왼쪽부터)가 한자리에 모여 환하게 웃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박영대 기자
○ 59세 삼총사 ‘재입사 동기’로 뭉치다

지난달 말이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최종찬(59) 씨의 집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세요”라고 묻자 기업은행 인사팀이라고 했다.

“2003년 저희 은행 퇴직하신 분 맞으시죠? 이번에 거래 기업에 컨설팅을 해 줄 매니저가 필요한데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재직 시절 업무 성과도 좋으시고 관련 자격증도 갖고 계셔서 전화드린 겁니다.”

“저…언제까지 답변드려야 합니까?”

“죄송하지만 오늘 중으로 부탁드립니다.”

수화기를 잡고 있던 최 씨의 손이 떨렸다. 그는 “해 보겠다”고 또박또박 답했다.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가족들도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최 씨는 “가족들이 감격해하는 저를 보고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말했다”고 했다.

직장 동료였던 이완수 씨와 김진희 씨도 같은 날 재입사 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이들 세 명은 모두 기업은행에서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3년 1월 회사를 나온 ‘퇴직 동기’다. 나이도 59세로 동갑인 이들은 ‘재입사 동기’로 다시 한번 뭉치게 됐다.

○ 기업 컨설팅 매니저로 새출발

“이젠 그냥 한가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좀 있었어요. 그런데 30년 경험 썩히는 것이 너무 아깝더라고요.”(이완수 씨)

“더는 은행 일 안 한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회사에서 다시 연락을 받으니까 정말로 고마웠습니다.”(김진희 씨)

2003년 명예퇴직을 한 이후에도 이들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은행 산하 기은경제연구소에서 계약직이지만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월급은 예전의 절반밖에 안 됐지만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이나 공휴일에는 자격증 공부를 하며 오히려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덕분에 환갑이 다 된 나이에 경영지도사와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심사원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이 자리마저도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등산, 독서, 인터넷 서핑 등 안 해 본 소일거리가 없었죠.”(최종찬 씨)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매일 나갈 수 있는 일터가 그리웠던 것일까.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회사가 자신들을 다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사라졌다. 기업은행은 최근 이들 세 사람을 포함해 총 40명의 전직 지점장을 기업 컨설팅 매니저로 재고용했다.

이 씨는 “퇴직한 뒤에도 회사에서 또 찾는다니까 가족들이 나를 다시 보더라고요”라며 웃었다.

○ 다시 신입행원의 마음으로

지점장은 은행원이라면 한두 번씩 꿈꿔 보는 ‘야전 사령관’이지만, 그와 동시에 은행원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점장 열 명 중 아홉 명은 임원이 되지 못하고 퇴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정년(59세)보다 훨씬 이른 55세 전후에 물러난다고 한다.

금융과 산업 현장에서 수십 년을 뛴 ‘역전의 용사’이지만 은행원들이 퇴직 후에 적당한 일자리를 찾는 것은 무척 어렵다고 이들은 전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기회를 얻었다.

일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만큼 다짐도 대단하다. 강권석 기업은행장도 “신입 행원의 마음으로 업무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퇴직 후 경영 애로를 호소하는 중소기업인들을 많이 만나 봤어요. 최소한 은행 거래에 관한 어려움만큼은 제가 치유해 드리겠습니다.”(김진희 씨)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표정에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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