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병주]한미FTA 체결의지 있기는 한가

  • 입력 2006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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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개방 이후 경제성장 궤도를 순탄하게 항해하고 있는 중국 일부 지역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경탄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입국하던 지난 일요일 오후 인천공항은 분위기가 살벌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미국 대표단의 콧대를 입국 초기부터 꺾어 놓겠다는 반대 시위대들의 기세가 등등해 실망의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오늘날 수준의 경제후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전략과 국내시장의 대외개방 및 산업구조조정을 점진적으로 추진한 덕분임을 이들은 망각하고 있다.

FTA 등 통상협상 과정에는 외국을 상대로 하는 대외 협상 못지않게 국내 이익집단과 대화하는 대내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제는 정부와 이익집단들의 대화가 말보다는 실력 행사, 합리적 논의보다는 일방적 주장으로 일관되고 있다는 데 있다.

워싱턴과 인천공항 시위가 미국 측에 국내 반대 여론의 강도를 전달해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노림이 있었겠지만 반대로 지리멸렬한 협상 태세를 드러내는 역작용도 클 것이다.

도대체 수출입 교역이나 통상협상을 왜 하는가? 교역 당사국에 서로 이익이 되게 하자는 것이고 기본원칙은 어디까지나 대다수 국민의 경제후생 증진이다. 비교우위 원칙에 따라 발생하는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이득을 보는 부문이 있고 손실을 입는 부문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의 문제는 객관적인 득실 계산, 균형 있는 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 핵심부의 확고한 리더십이 의문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안이 중요한 만큼 활발한 찬반 의견 개진은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한쪽 시각에 치우쳐 왜곡된 사실을 과대 포장하고 다른 쪽을 위협 압박하는 것이다.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 측은 객관적인 FTA의 이익 부분을 과대, 손실 부분을 과소 평가한다는 비판을 극복해야 한다.

반대 측은 부정적인 면만을 부풀리지 말아야 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실패로 단정하고 실직 노동자 농민의 개별 사례를 취재하여 마치 전반적 실패로 왜곡하고 있는 TV 매체들의 보도는 허구투성이다.

가짜 아닌 진짜 농민들의 반대라면 동정이 간다. 그러나 미국에 비해 저임금인 한국 노동계가 반대 입장에 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경제적 문제를 떠나 정치 색깔의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다수 국민의 이익, 즉 국익을 외면하는 언동이다.

도대체 정부 핵심이 무슨 꿍꿍이셈인지 궁금하다. 추진하다가 되면 자기네 공적이고 안 돼도 좋다는 계산인가? 대선이 걸린 내년에 한미 FTA 협상을 결렬시키고 그 책임을 미국 측에 떠넘겨 고조된 반미 감정의 물결을 타는 것이 재집권에 유리하다는 속셈인가?

국민은 아리송한 리더십에 지쳐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국민을 우롱하는 리더십이 한미 FTA 협상에서도 흐리멍덩하다. 권력 핵심의 친위부대들이 반대에 총동원되고 있다. 팔짱 끼고, 입 다물고, 눈치 보는 것을 리더십이라 할 수 없다.

잘나가고 있는 신흥 경제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정치 리더십이 안정되고 경제정책 운영방향이 일관되게 개방 개혁으로 잡고 있다. 싫든 좋든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각국은 FTA를 무한경쟁의 승전가도로 여기고 질주하고 있다.

남미 일부 국가의 개방 반대 좌파 정권들은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나친 사회복지 정책으로 동맥경화가 심한 유럽 국가들은 시장개방 개혁으로 선회하고 있다. 서울의 어리석은 자들은 남의 실패를 모범으로 보고 있다. 반대 시위대에 둘러싸인 신라호텔에서 한미FTA 2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지금까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반적인 실패로 귀결될 성싶다. 기사회생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 리더십이 잠에서 깨어남을 볼 수 있을까?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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