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회장 첫 공판

  • 입력 2006년 6월 1일 17시 59분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사적으로 횡령하고 무리한 투자 실패의 책임을 계열사로 떠넘겼다."(검찰)

"비자금 조성은 관행이었고 계열사 관련 출자는 외환위기 사태 당시 국가부도 위기에서 그룹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경영판단이었다."(변호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첫 공판이 1일 열렸다.

이날 공판은 검찰의 공소사실 진술과 정 회장 및 변호인의 진술이 있었을 뿐 검찰 변호인 간 다툼 등 본격적인 심리는 없었다. 검찰이 비자금 용처 수사 등이 마무리되지 않아 수사기록을 아직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판이 열린 법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장 큰 417호 대법정. 10시 예정인 공판 시작 30분 전부터 190석의 좌석이 모두 들어차 100여 명의 방청객들이 좌석 옆 복도에 서서 공판을 지켜봤다.

정 회장은 이날 파란색과 보란색 세로줄무늬가 겹친 수의를 입었으며 피고인석에 서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법정에는 이전갑 현대차 부회장과 정 회장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등이 나왔다.

▽"비자금 797억 원 빼돌리고 4000억 원 손실 회사에 떠넘겨"=검찰은 정 회장이 현대차 본사, 기아차 등 6개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 1034억 원의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이 가운데 797억 원을 가족 생활비, 불법 정치자금 등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또 정 회장이 항공산업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을 앞세워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책임을 현대차와 현대정공 등 계열사에 떠넘겨 회사에 4000억 원 대 손실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또 정 회장이 △채무를 편법으로 탕감받은 ㈜본텍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본텍 주식의 헐값 매입 주도 혐의와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국제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서류상 펀드를 통해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혐의 등을 입증하겠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조성은 관행, 회사 손실은 불가피"=변호인으로는 대법관 출신 정귀호 변호사, 올 2월 부산고법원장으로 퇴직한 김재진 변호사,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로 퇴직한 박순성 변호사, 김&장 법률사무소의 신필종 변호사가 출석했다.

변호인들은 정 회장이 "전략적 차원에서 그룹 발전 방향이나 사업의 틀에 대해 결정할 뿐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는 계열사 대표이사 등 임직원들이 집행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특히 본텍 주식 헐값 매입 관련 배임 혐의에 대해 "진실한 사실관계가 상세히 심리 검토돼야 한다"며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에 대해 다툴 의사를 밝혔다.

박 변호사는 계열사 출자 등으로 인한 배임 혐의에 대해 "IMF라는 국가부도 위기에서 그룹 존립을 위한 경영판단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핵심"이라며 "사후적인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부가 '큰 틀'에서 판단해 달라"고 주장했다.

▽진정서 트럭 2대 분량= 재판부는 검찰 진술이 모두 끝난 뒤 "비자금 용처가 밝혀진 대로 특정해 달라"고 했으나 검찰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본텍 주식의 실제 가치를 특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에게 "트럭 1, 2대 분량의 진정서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해야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기소된 지난달 16일부터 1일까지 재판부에 제출된 진정서(탄원서)는 이미 250여 건에 이른다.

정 회장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와서 미쳐 뒤를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여러 법적 문제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다음 공판은 12일 오후 2시.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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