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법원장 ‘두산 판결’ 비판 파문 확산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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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판결을 공개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본보 17일자 A1면 참조

대법원 관계자는 17일 “이 대법원장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판결을 비판했다는 동아일보 보도 내용은 전체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관예우’ 비판도 영향=이 대법원장의 발언 배경에 대해 대법원의 한 판사는 “그동안 일부 판결이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나 변호사 등에 따라 양형이 크게 달라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위기감 때문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전관예우’에 대한 외부의 계속된 지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에게서 이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번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의 피고인들은 법원의 거물급 판사 출신 변호사를 다수 선임했다.

재판장과 변호사들의 학연 지연도 논란거리였다. 이 사건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K고교 사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같은 고교 출신 판사와 변호사들이 관련돼 있었다. K고 출신 재판장에 고위 판사 출신의 K고 동문 변호사 3명이 선임돼 있었다. 이 대법원장도 이들과 같은 K고 출신이다.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판결을 비판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할 말을 했다’라는 지지와 ‘재판에 대한 간섭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법정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발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서울고법의 중견 판사는 “이미 며칠 전부터 일선 판사들 사이에 대법원장의 발언이 퍼지기 시작했다”며 “우리도 두산그룹 사건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법관 독립성 훼손이라는 부정적 영향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법조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어떻게 바로잡아 가느냐가 앞으로 사법부의 과제”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河昌佑) 공보이사는 “대법원장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그의 발언을 개별 사건에 대한 간섭이라기보다 ‘사법부 전체의 신뢰 회복’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들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대법원장이 판사의 판결에 대해 평가하면 판사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중견 검사도 “원론적으로는 옳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히려 법관의 독립성을 스스로 침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이 판결을 하는 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변호사업계에도 찬바람이 불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강형주(姜炯周)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대법원장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전해 듣긴 했지만 그에 대해 뭐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나는 판결로 모든 것을 말했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대법원장께서 내 판결에 크게 화를 내셨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9일 대법원장 공관의 만찬 자리에 가면 가시방석일 것 같아 안 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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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누리꾼 찬반공방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용훈 대법원장의 판결 비판 보도에 대해 수천 개의 댓글이 쇄도하며 누리꾼들 사이에 열띤 토론과 공방이 벌어졌다.

아이디가 ‘spaland’인 누리꾼은 “지금껏 특권층이나 부유층이 집행유예, 보석, 형 집행정지 등 특권을 많이 누린 것이 사실”이라며 “법관의 독립성에 앞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공정한 판결이 우선”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fsh0314’는 “두산 판결로 사법부에 대한 실망감을 지울 수 없었다”며 “대법원장의 솔직한 자기반성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관 독립을 해친다는 비판의 댓글도 적지 않았다.

‘slee011’은 “판결에 대해 대법원장이 언급하는 것은 헌법기관에 대한 월권행위”라고 밝혔다.

‘jeon388’은 “두산 오너 일가가 대부분의 피해액을 변제한 만큼 집행유예라는 법원의 판결은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등 시민 단체들은 “재벌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로 일반 국민은 ‘사법부 판결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며 “신뢰받는 사법부가 되기 위해 앞장서 개혁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반면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이헌(李憲) 사무총장은 “설사 잘못된 판결이라면 상급심에서 시정될 수 있다”며 “대법원장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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