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M&A 대전]“헐값 매각 NO” 채권단 콧대 높아졌다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산업계와 금융계는 ‘초대형 인수합병(M&A) 대전(大戰)’으로 술렁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7, 8년 만이다.

매물로 나온 기업이 20개가 넘고 전체 시장 규모도 50조 원에 이른다.

알짜 기업 하나만 인수해도 업계 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기업들은 치열하게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어떤 기업이 나왔나

이번 M&A 대전은 하이닉스반도체에서 시작됐다.

산업은행 이상권(李相權) 이사는 “올해 7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서 1년 반가량 일찍 졸업한 하이닉스가 촉발한 연쇄반응의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10조 원에 이르는 하이닉스 매각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다른 기업들도 연쇄적으로 매각이 앞당겨졌다는 분석이다.

시장에 나온 매물은 크게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옛 대우 계열사와 하이닉스 현대건설 등 옛 현대 계열사, 쌍용건설 ㈜쌍용 등 옛 쌍용 계열사, 외환은행 LG카드 등 금융회사로 나뉜다.

1999년 8월 워크아웃이 시작된 옛 대우 계열사가 가장 눈에 띈다. 옛 대우 계열사에는 총 12조70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며 대부분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가 대주주다.

대우건설과 대우정밀은 올해 말에서 내년 중반 사이 매각작업이 끝날 전망이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공식적으로 당분간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히긴 했지만 대우조선해양도 2조 원 이상의 ‘거물’로 꼽힌다.

최대 매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하이닉스는 늦어도 올해 11월까지 지분의 22.8%를 국내외에 매각할 예정이다.

지난해 4조6461억 원의 매출을 올린 현대건설은 내년까지 채권단이 공동으로 관리한 후 매각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확 달라진 분위기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펀드 A사의 직원들은 최근 맥주 파티를 벌였다. 모처럼 기업체 한 곳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 것을 기념한 자축연이었다.

A사 관계자는 “외국 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년여 만에 처음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맥주 파티는 ‘2차 M&A 대전’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우선 해외자본에 대한 시각이 7, 8년 만에 ‘구원투수’에서 ‘투기세력’으로 백팔십도 달라졌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빚이 많은 기업들을 ‘일단 팔고 보자’는 분위기 때문에 헐값에 외국계 금융자본에 팔아치웠다. 당시 해외자본 유치는 떨어진 국가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발등의 불’이었다. 당연히 매각 후에는 늘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이번엔 국내 자본이 주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올해 들어 진행된 M&A에서 진로가 하이트에, 대우종합기계가 두산에, 인천정유가 SK㈜에 각각 인수됐다.

국내 자본 인수론은 매각 대상으로 나온 일부 기업이 국가 전략산업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부실채권 정리 차원에서 빨리 매각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번에는 매물의 규모가 크다”며 “가격이 얼마로 정해지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 대상 기업의 가치는 외환위기 때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대부분 구조조정과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재기에 성공한 우량 기업들이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오히려 가격이 비싸서 인수자가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달 초 인천정유를 인수한 SK㈜는 3조 원이 넘는 인수 및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사 사옥까지 매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어떻게 진행될까

기업 하나만 잘 잡으면 재계의 판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물밑 저울질이 한창이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는 움직임은 아직 포착되지 않는다.

인수 후보로는 2010년 재계 5위 진입을 목표로 내세운 GS그룹과 최근 국내 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한 군인공제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최근 속속 만들어지고 있는 국내 사모펀드도 인수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 자본과 사모펀드가 손을 잡고 공동 전선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나온다.

금융권에선 단일 기업이나 자본이 인수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서 몇 개 회사가 무리를 이루어 인수하는 컨소시엄 형태의 공개입찰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별 기업의 매각 가격은 시장 예측과 인수 의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하이닉스에 대해 10조 원이라는 얘기가 최근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반도체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해 입찰 때 8조 원을 써낸다면 가격은 그렇게 결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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