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989원”…환율 널뛰기에 지옥-천당 오간 외환딜러

  • 입력 2005년 3월 10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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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긴 하루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내린 10일 오후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선임 외환딜러인 구길모 과장이 모니터로 환율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구 과장은 이날 장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줄곧 모니터를 지켜봤다. 박영대 기자
너무 긴 하루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내린 10일 오후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선임 외환딜러인 구길모 과장이 모니터로 환율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구 과장은 이날 장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줄곧 모니터를 지켜봤다. 박영대 기자
“앗,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이다!”

10일 오전 11시 반경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19층 외환딜링룸.

외환중개업소인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의 현물환시장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외환운용팀 선임 외환딜러 구길모(具吉謨·36) 과장이 핫라인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전 9시 전날 종가보다 2원 떨어진 999.0원에 거래가 시작돼 2시간 반 만에 989원까지 하락했던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기 때문.

이날 오전 구 과장은 환율이 오르면 팔 작정으로 보유하고 있던 달러화 일부를 손해를 감수하고 달러당 996원 선에 팔았다.

이후 환율이 계속 추락하자 구 과장은 ‘이 상태로는 손해를 만회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990원 근처까지 떨어지자 현재 수준이 ‘바닥’이라는 쪽에 걸기로 했다. 조금씩 달러를 사들였다. 환율 하락세가 이어지면 엄청난 손실을 입을 판이었다.

990원 선마저 깨지면서 하늘이 노랗게 변했던 구 과장은 환율이 반등하기 시작하자 ‘살아났다’.

보통은 키보드를 치면서 거래를 하지만 환율 변화가 갑작스러울 때는 전화와 키보드를 함께 사용한다. 입으로는 ‘셀(sell·매도)’을 외치며 손도 바쁘게 움직인다.

“흥분하면 저도 모르게 일어서게 됩니다.”

23분 만에 19원 오르며 1008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조금씩 떨어져 안정된 모습을 보이자 구 과장은 그제야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990∼999원대에 산 달러를 1002원 이상에 팔아 오전에 본 손해를 거의 만회했다.

낮 12시 5분 구 과장은 배달된 짬뽕을 먹으면서도 앞에 놓인 7개의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2003년까지 현물환시장은 오전장과 오후장 사이 점심시간이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점심시간 없이 거래가 이어진다. 환율이 10원 떨어졌다가 다시 19원 오르는 날에는 화장실에도 제대로 못 가고 사무실을 지킨다.

“이런 날이 외환딜러에게는 두려우면서도 즐거운 날입니다. 변화가 많으면 그만큼 기회도 많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환율이 찔끔찔끔 오르거나 내리는 날은 재미가 없죠.”

서울외환시장의 하루 거래 규모는 대체로 30억∼40억 달러지만 이날은 오전에만 40억 달러를 넘었다.

외환딜러 6년차인 구 과장은 원-달러 스폿 트레이드(spot trade·현물환 거래)만 4년째다.

외환딜러의 주 업무는 달러화나 엔화 등 외국의 화폐를 환율 변동 틈을 타 사고팔면서 차익을 벌어들이는 것. 환전 차원에서 기업들의 외화를 대신 사거나 팔아주는 일을 포함해 수익을 올리기 위한 머니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싼 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파는 간단한 원리다.

“환율을 10번 예측해 6번 맞히면 잘하는 것이고 7번 이상 맞히면 신(神)이라고 해요. 베팅하기에 따라 1억 달러를 거래하면 환율 1원 움직일 때 1억 원의 이익 또는 손해가 나잖아요.”

서울외환시장이 끝난 오후 3시 구 과장은 1000.3원으로 환율이 마감된 모니터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서 그래도 손해를 보지 않은 데 따른 안도의 한숨이었다.

“외환시장은 ‘제로섬’ 게임이에요. 오늘 누군가는 크게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크게 손해를 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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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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