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차별 난관 딛고 선 中企여성 CEO 3명

  • 입력 2004년 11월 16일 18시 20분


《“소비자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하지만 여자가 상품을 개발해 사업을 하기에는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국은 여전히 남자들 세상이거든요.”

여사장. 한국에서 ‘여(女)’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사업을 하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일까.

최근 중소기업 여성 최고경영자(CEO) 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맨손으로 시작해 어엿한 중소기업 대표로 자리 잡기까지 서로의 얘기에 맞장구치던 이들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굴 마담 아니냐?’=청소기 제조업체 한영베스트의 한경희(韓京姬·40) 사장은 스팀으로 걸레질을 할 수 있는 스팀 청소기로 ‘대박신화’를 달성한 기업인.


그는 ‘걸레질 좀 안하고 살 수 없을까’ 하는 단순한 고민이 계기가 되어 청소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제 상품화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한 사장은 “정책 자금을 신청하러 가면 ‘얼굴 마담 아니냐?’, ‘진짜 남자 사장 데리고 오라’ 등 모욕적인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미용가발을 제조 판매하는 시크릿우먼의 김영휴(金永烋·41) 사장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머리숱 때문에 고민하던 그는 처음에는 재미로 ‘부분가발’을 개발했다. 핀처럼 머리에 꽂아만 주면 머리카락이 풍성해지고 키도 커 보이는 제품.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상품으로 만들었지만 유통망을 뚫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유통업체의 30, 40대 남성 바이어들은 제품을 보지도 않고 그를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던 것. “남성 바이어들에게 여성을 위한 미용가발은 아무리 설명해도 느낌이 오지 않죠. 직접 써 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조리기구 판매업체 프리미어CSI의 박민주(朴玟注·50) 이사는 일부러 ‘이사’라는 직위를 가지고 사업을 한다. 그는 “여사장이라고 하면 고객들이 멀게 느껴 불편한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주부여서 가능했다=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공하는 데 여자인 점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여자였기 때문에 주 소비자인 여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박 이사는 30세 때 주방용품회사 ‘타파웨어 코리아’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연간 63억원 매출의 대리점을 운영하던 판매왕 출신. 현재는 이탈리아 요리기구를 수입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박 이사가 파는 것은 요리기구뿐이 아니다.

그는 10여년 동안 손수 전국의 요리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요리를 배우고 조리법(레시피)을 개발해 왔다. 2000여종의 레시피는 요리기구를 산 고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며 직접 요리도 가르쳐준다. 서울 강남지역 주부들 사이에서 ‘고객 감동’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그는 “여자였기 때문에 고객 마음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사장도 “매일 무릎 꿇고 걸레질을 해 보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편리한 청소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제조 유통업 진출이 너무 적다”며 “신용보증기금 등의 정책자금 지원을 결정하는 기관과 유통업계에 여성인력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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