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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31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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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호평·평내택지개발지구.
7월부터 입주가 시작돼 이미 8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황량한 공사판’ 수준이었다.
아파트 수십 채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단지 내 도로, 학교, 약국 등 편의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외부에서 두 ‘신도시’로 연결되는 도로는 편도 2차로인 국도 46호선(경춘국도)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 도로는 이미 포화상태여서 출퇴근시간이면 시속 20km도 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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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호평지구 내 K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으로 이날 새 보금자리 구경을 온 천모씨(41·여)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구리나들목(IC)에서부터 호평지구까지 10여km를 오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토지공사와 남양주시 등은 당초 연내에 두 지구의 자동차전용도로를 완공하고 국도 46호선을 편도 3차로로 확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교통영향평가에서도 두 지구에 각각 국도 46호선의 우회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된 것이 없다. 자동차전용도로 구간에서 문화재가 발굴되면서 공사가 중단돼 현재 고가도로의 철근 기둥만이 서 있다. 국도 46호선 확장 및 우회도로 건설공사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호평지구 한가운데로는 경춘선 철로가 지나간다. 당초 예정대로면 이 철로는 택지개발 이전에 지구 밖으로 옮겨져야 했다. 하지만 철도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미루는 바람에 철로 자리에 건설돼야 할 단지 내 도로, 학교 등이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기차소음 민원도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난개발의 단골 메뉴인 학교 부족 역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호평·평내지구에는 초등학교 6개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5개교는 아직 공사 중이고 1개교는 착공도 못한 상태다. 어린이들은 공사판을 지나 2km가량 떨어진 지구 밖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상당 구간에 인도조차 없어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평내지구 인근 3만여평에는 매연이 진동하는 염색공장이 150여개나 밀집해 있다. 하지만 택지개발에 앞서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이 지역이 녹지로만 표시돼 있었다.
호평·평내지구 입주자대표모임 관계자는 “몇 년 전 정부가 수도권 난개발 대책을 많이 발표했기 때문에 이제는 나아졌을 거라고 믿고 입주했다”며 “도대체 언제까지 이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될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양주시 예창근 부시장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시에서도 잘 알고 있다”며 “시와 토공, 교육청 등 관계기관이 수시로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주=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난개발’ 되풀이 안되려면▼
정부는 수도권 난개발 대책으로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2001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30만평 이상의 택지개발사업에 대해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수립토록 한다는 게 이 법의 골자.
하지만 실제로 경기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택지개발지구의 절반가량이 30만평 미만이다.
또 이 법은 교통개선대책 수립 시점을 개발계획 승인 전으로 규정하고 있어 실제 입주 때까지 도로가 완공되기에는 너무 촉박하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는 최근 “광역교통대책 수립 대상 면적을 택지면적 10만평 이상으로, 교통대책 수립 시점을 택지예정지구 지정고시 전으로 강화해 달라”고 건설교통부에 건의했다.
정부는 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지난해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건설사로 하여금 학교 등 기반시설 용지를 제공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시설의 건설 시기 및 건설 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있어 기반시설이 태부족한 상태에서 입주가 이뤄지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영국은 1947년 ‘개발허가제’를 도입, 택지개발권 자체를 국유화해 민간에 의한 난개발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개발부담금 부과기준을 강화하고 토지이용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성장관리 정책을 펴고 있다.
국토연구원 김근용 부동산동향 팀장은 “수도권의 각 지역 사정에 따라 규제를 달리하는 등 선진국의 사례를 적극 참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남양주=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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