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함인희/‘이벤트 사회’를 경계한다

  • 입력 2004년 5월 25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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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너나없이 쓰임새가 헤퍼지는 달이다. 어린이날을 지나자마자 어버이날이 기다리고 있다. 뒤이어 스승의 날. 그 바로 전날은 애인에게 장미꽃을 주는 ‘로즈데이’였단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성년의 날을 지나고 나니 다음 날이 아직은 생소한 ‘부부의 날’이라지 않던가. “5월이 가니 가슴이 후련하다”는 푸념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을 듯싶다.

▼현란한 행사들에 가려진 日常▼

최근 들어 우리의 일상이 현란한 이벤트에 점령당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2, 3년 사이 대학가에선 스승의 날을 기념해 형형색색의 풍선과 재기발랄한 포스터에 꽃다발도 모자라 “교수님 사랑해요”라는 치기어린 현수막까지 등장했는가 하면, 스무 살 성년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자못 요란하다. 향수와 키스, 그리고 ‘열아홉 송이 장미’는 기본이요, 주인공 얼굴을 케이크에 파묻거나 머리 위로 샴페인을 쏟아 붓는 축하의식이 종종 눈에 띈다.

기념일 가운데 수입 브랜드의 위력이 커지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밸런타인데이는 이제 만인의 기념일이 되었고, 핼러윈데이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가 하면, 국적 불명의 화이트데이엔 사탕 바구니를 들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우곤 한다. 이런 날에 초등학생들까지 들썩거리는 걸 보면 수입 기념일의 위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의례나 기념일, 축제나 행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다만 고유의 명절이나 통과의례, 24절기 등이 우리네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자연의 순환에 적응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면 요즘의 의례 및 각종 ‘데이’는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갈망을 대변하는 듯하다. 여기에 고도 소비사회의 상품화 전략이 적극 가세하면서, 연인간의 사랑은 초콜릿과 사탕으로 포장되고 부모에 대한 효도, 스승에 대한 감사, 부부간의 정이 모두 ‘마음 가는 곳에 상품(권) 간다’고 부추긴다.

삶의 이벤트화는 이제 일상의 범주를 넘어 시민운동 및 정치영역으로까지 입지를 확대해가고 있다. 이미 시민운동 내부에서는 이벤트성 사업 및 언론 홍보에 치중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고 ‘감성 혹은 이미지 정치’ 하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정치의 이벤트화’를 놓고도 이를 우려하는 견해 또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시민운동이든 선거든 한바탕의 축제 마당으로 화할 경우 무관심을 참여의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관심에 연연한 일회성 행사에 주력하노라면 시민운동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희소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요, 명망가 중심의 ‘행사를 위한 행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피로와 좌절이 중첩될 위험성이 있다.

이벤트 정치 하에선 결국 국민이 최대의 희생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벤트 정치는 정치가의 비전이나 지도력, 나아가 전문적 역량에 주목하기보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립 서비스, 그리고 실체가 애매한 이미지만을 앞세워 국민을 현혹시키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이벤트 뒤의 허탈감 어떻하나▼

그뿐이랴. 이벤트는 속성상 순간적으로 소비되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케 한다. 더불어 의미를 숙고하기보다는 재미에 탐닉하도록 한다. 한데 재미란 것은 매사에 쉽게 싫증을 내는 주범이기에 더욱 자극적인 재미를 찾아 나설 것을 부추긴다. 그런 만큼 이벤트의 일상화든 일상의 이벤트화든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의 지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벤트가 승해 간다 함은 우리네 삶의 지리멸렬함이 더해 간다는 것의 방증이요, 그 무의미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고조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이벤트가 끝난 후의 허탈감은 누가 채워주겠는가? 잠시 덮어 둔 삶의 의미는 누가 찾아주겠는가?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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