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구제대책 ‘구멍’ …은행들 담보있는 채권 안넘겨

  • 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15분


코멘트
대구에 사는 김모씨(42)는 최근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한마음금융(배드뱅크)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배드뱅크의 창구직원에게서 “금융회사에 진 빚 4000만원 가운데 700만원만 지원해 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낙담했다.

김씨가 빚을 지고 있는 은행과 신용카드업체들이 보증인과 담보가 있는 부채 3300만원은 자신들이 그대로 보유하고 나머지만 배드뱅크로 넘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은행들이 받아내기 쉬운 채권은 그대로 갖고 있는 바람에 신용불량자에서 탈출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다른 금융기관들이 각각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면 배드뱅크를 이용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출범한 한마음금융을 찾은 고객들 가운데 김씨와 같은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배드뱅크가 기대한 것과 달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마음금융 관계자는 “실제로 금융회사들로부터 넘겨받은 채권은 보증인이 없는 100만원 이하 소액채무가 대부분”이라며 “금융기관들이 받아내기 쉬운 채권은 자신들이 채권을 회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와 함께 배드뱅크가 신용불량자 구제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여 금융기관의 폭과 대상 채무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배드뱅크를 찾은 신용불량자 정모씨(37)는 “채무자 입장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증이나 담보가 있는 빚을 우선적으로 갚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 때문에 배드뱅크가 아닌 금융기관의 빚을 먼저 갚다보면 배드뱅크에서 지원받은 빚은 제대로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배드뱅크를 찾은 신용불량자 정모씨(37)는 “이처럼 일부만 배드뱅크의 지원을 받게 되면 주변에 피해를 덜 주기 위해 보증인이나 담보가 있는 다른 금융기관의 빚을 우선적으로 갚을 수밖에 없다”면서 “배드뱅크에서 지원받은 소액의 빚은 결국 다시 연체해 신용불량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은행과 신용카드업계에서는 “신용불량자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받아낼 수 있는’ 채권을 배드뱅크로 넘길 수 없다”고 밝혔다.

A시중은행 가계여신 담당 부행장은 “법적 절차를 밟으면 자체적으로 전액 회수가 가능한 채권을 무조건 배드뱅크로 다 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담보가 있는 채권을 넘기지 않기로 한 것은 이미 배드뱅크 출범 이전부터 얘기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