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제 盧대통령이 말해야 한다

  • 입력 2004년 1월 28일 18시 27분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선거자금을 관리했던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이 본보와의 회견에서 “당시 모금한 후원금 명세를 선거가 끝난 후 노 대통령 당선자에게 상세히 보고했다”고 털어놓았다. SK 삼성 현대 한화 금호 등 10대 기업으로부터 모금한 99억원을 포함해 총 188억원의 후원금을 낸 기업들과 기업별 액수까지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노 대통령이 입을 열 때다. 이 돈이 모두 불법자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도 노 캠프의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숱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수사의 형평성 시비까지 일고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당사자인 대통령이 전모를 밝히는 것이 도리다. 더욱이 민주당까지 100억원대의 불법자금 수수의혹을 새롭게 제기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노 대통령은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공언했지만 대선자금 규모에 관한 한 어떤 사실도 밝힌 적이 없다. “밝히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결과가 나오면 말하겠다”고 한 게 전부다. 그러나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이다. 검찰이 열심히 수사한다고 해도 과연 야당을 수사하는 것만큼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야당은 대선자금 청문회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정치도의적으로도 입장 표명을 더 미루기는 어렵다고 본다. 대선자금 논란에 발이 묶여 경제, 민생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이 계속 뒷전으로 밀린다면 대통령도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재신임 승부수’를 던져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차떼기 모금’이 드러났고, 이를 통해 정치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국민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정치 또한 소모적 정쟁(政爭)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법자금의 다과(多寡)와 도덕성을 결부시킴으로써 야당을 자극했다. “우리는 티코를 타고, 한나라당은 리무진을 타고 달렸다”는 발언은 대표적 예다. 우리는 적게 받았으니까 많이 받은 한나라당보다 깨끗하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도덕성 비교가 타당한지도 모르겠거니와 대통령으로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이제 말해야 한다. 측근들의 모금활동을 사전에 어느 정도 알았는지, 안희정씨 등이 거둬들인 돈은 188억원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돈은 또 얼마인지, 불법 자금이 10분의 1이 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총선이 코앞이다. 대선자금 시비를 총선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일단락 짓고 정책과 인물이 대결하는 총선을 치러야 한다. 노 대통령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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