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사진 120억 배상 판결]뇌물제공에 엄격한 法적용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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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이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기업주의 경영판단을 존중하는 대신 비자금 조성을 통한 뇌물제공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진의 판단 존중=삼성측의 배상액이 1심에 비해 대폭 줄어든 가장 주된 이유는 재판부가 삼성전자의 이천전기㈜ 인수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경영진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재판부는 “삼성전자는 1년 전부터 이천전기의 사업성을 충분히 검토했고 인수를 위해 수차례 협상도 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며 “경영 판단이 실패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경우 경영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천전기 인수 과정에 이사들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이 아니며 그로 인한 손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으므로 이는 적법한 경영자 판단 범위 내에 들어간다는 것. 이는 전문 경영인의 ‘몸 사리기’ 경영이 가져올 부정적 파장을 우려한 재계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돈으로 제공한 뇌물은 총수가 배상=재판부는 이날 1988년 3월∼1992년 8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를 통해 조성한 75억원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공여한 책임을 대부분 인정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최근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혐의가 드러난 기업에 대해서는 검찰이 형사처벌하는 것과는 별도로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경영을 위임받은 총수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현재 검찰이 대기업들을 줄줄이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기업총수 소환조사 등 강도 높은 대선자금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수사결과 이들 기업의 불법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날 경우 주주들의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비상장주식의 평가는 순자산가치로=삼성전자는 당초 1만원에 사들인 삼성종합화학 주식 2000만주를 8개월 만에 계열사에 2600원에 매각해 “계열사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부당내부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금까지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으며 SK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사건에서도 비상장주식의 가격 산정 기준이 없어 재판이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비상장주식의 가치는 순자산가치로 산정해야 하며 삼성종합화학 주식 매각 당시 주당 순자산가치가 5733원이었으므로 이에 준해 손해액을 626억원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침해했을 때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 회사가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다. 상장 및 등록기업의 경우 전체 발행주식 총수의 0.01% 이상이 모여야 소송을 낼 수 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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