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무소불위 권력기관' 되나…사법경찰권 요구

  • 입력 2003년 8월 7일 18시 04분


공정거래위원회가 권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정위는 조만간 입법예고할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 청구권)을 상시(常時) 보유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또 한때 폐지할 것을 검토했던 ‘전속고발권’도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사법경찰권을 확보하는 방안도 법무부와 논의 중이다.

공정위가 권한 강화에 무게를 두는 것은 기업의 지배·소유구조 개편 작업을 당초 계획대로 밀어붙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정위가 이 3가지 권한을 모두 갖게 되면 조사 대상 선정부터 조사기간, 조사방법, 처벌 등 모든 제재 방안을 손에 쥐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권한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계좌추적권 상시 보유=공정위는 올해 초부터 한시적인 계좌추적권을 영구적으로 보유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재계는 공정위의 기업 감시권이 지나치게 강화된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계좌추적권과 함께 전속고발권을 계속 보유하고 법무부에 ‘사법경찰권’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려는 의도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 관련 법 위반 사항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을 통해서만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에 대해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공정위가 국세청이나 검찰처럼 사정(司正)기관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며 “계좌추적권을 상시 보유한다고 해도 발동요건을 강화하는 등 견제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종익(申鍾益) 상무는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계속 갖겠다는 건 금융실명제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경찰(공정위)이 집(기업 금융계좌) 앞에 상주하면서 감시한다면 누가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기업들의 불공정 관행이 척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좌추적권은 필요악”이라며 “기업 활동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계좌추적권을 활용할 계획인 만큼 재계의 우려는 과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속고발권 유지도 권한 강화라기보다 소송이 남발되거나 기업들이 경미한 범법행위로 인해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공정위는 주장한다.

▽지주회사 전환 촉진=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에서 지주회사 부채비율(100%) 충족기한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당초 재계는 3년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공정거래법 상의 유예기간이 대부분 2년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또 현물출자나 회사분할 외에 주식교환이나 주식 이전(移轉)도 지주회사 전환 때 요건 충족을 위한 유예기간 인정사유에 포함시켰다.

합작기업을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둘 경우 지분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의 문제도 6월 현행 규정보다 완화하겠다는 윤곽만 나왔으나 이번에 30%로 확정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결론 못내=재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출자총액제도 개편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동안 ‘시장개혁 태스크포스’에서 논의됐지만 공정위와 다른 부처, 재계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자체안을 중심으로 개편안을 마련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넣는다는 방침이다.

현재로선 출자총액제한에서 예외 또는 제외되는 조항 가운데 일부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 당국자는 “제도 개편을 위한 용역 결과를 분석해 국회 회기 중에라도 개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권한강화 쉽지만은 않을 듯=공정위는 부처간 협의를 거쳐 올 가을 정기국회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낼 방침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거치면 내년 4월 1일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공정위가 원하는 대로 대대적인 권한 강화가 실제로 이뤄질지는 다소 불투명하다.

우선 관계부처 협의 단계에서부터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재정경제부 박철규(朴哲圭) 정책조정과장은 “계좌추적권은 금융실명제의 중대한 예외조항”이라며 “폐지를 전제로 논의해야 할 사안인데도 이를 상시화한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부처간 협의에서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국회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특히 계좌추적권 상시보유에 대해서는 야당의 반대가 거의 확실할 것으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주요 내용
계좌추적권
(금융거래정보 요구권)
2004년 2월 말 시효 만료에서 상시 보유로 전환
지주회사 전환 촉진지주회사 부채비율(100%) 충족기간 2년으로 연장
비상장 합작 자회사 지분 30%로 완화
손자회사 보유주식 처분기간 2년으로 신설
주식교환과 이전, 지주회사 자산감소 때도 지주회사 요건충족 유예기간 인정
기업 인수합병 촉진주식 취득 전에 기업결합 심사
시장지배력이 일정 수준을 넘는 경우에만 집중 심사
기업 불공정행위로 인한 피해 구제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 이전에도 개인이 법원에 피해배상 청구 가능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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