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부동산 입회조사 현장]"그런다고 집값 잡히겠나"

  • 입력 2003년 5월 25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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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 등 초강력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서울 강남과 경기 김포 파주 등 신도시로 지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23일부터 부동산 투기 과열 지역에 대해 직원들을 중개업소에 상주시켜 불법행위를 직접 단속토록 하는 ‘입회(立會)’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투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경기 김포의 경우 단속 자체를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고 서울 강남의 경우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거래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본보기자가 국세청 직원들과 동행해 투기지역을 둘러봤다.》

▽경기 김포=23일 경기 김포시 양촌면 일대. 이달 초 신도시로 지정된 이곳에는 한눈에 봐도 간판을 내건 지 며칠 안 돼 보이는 신생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상가마다 눈에 띄었다. 국세청의 단속 소문이 퍼져서인지 30여개 중개업소 중 절반가량이 셔터를 굳게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기자가 매물을 찾는 사람으로 가장해 접근하자 한 중개업소 주인은 “문 내린 가게들도 알고 보면 전화로 연락해 다른 데서 (손님을 만나) 할 건 다 하고 있다”며 “단지 (국세청 조사가) 귀찮아서 자리를 피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투기하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조사하든 말든 전혀 신경 안 쓴다”며 “지금 김포시내에 국세청 직원들이 와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업자들 사이에 연락이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근의 다른 중개업소 주인은 “국세청 직원들이 떴다는 건 그만큼 투자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셈”이라며 “이전에 비해 오히려 단속 발표 이후 땅을 사겠다고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국세청 단속반이 ‘떴다’는 소식에 50여개 부동산 중개업소 중 20여개가 이미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오전 11시경 강남구 삼성동 A부동산 중개업소에 서울 삼성세무서 소속 신재용(45), 김영면 조사관(36)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매매장부와 계약서, 아파트 목록 대장 등 서류를 넘겨받아 조사를 시작했다. 이 업소는 직원 2명의 월급과 월세를 비롯해 가게 유지비만 한 달에 400만원이 넘는 곳. 그러나 지난해 국세청에 신고한 소득 금액이 700만원에 불과해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각종 장부를 ‘이 잡듯’ 뒤졌지만 작년부터 지금까지 체결한 매매 계약서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전월세 계약서뿐이었다.

“매물 장부에 이렇게 많은 아파트가 올라있는데 매매 계약서는 왜 이렇게 적습니까?”(세무서 직원) “장부에는 일단 나온 매물이 다 오르고, 다른 부동산에서 거래된 것도 섞여 있어서 그래요. 우리는 매매 거래를 거의 못해 매달 적자예요.”(부동산업자)

그러나 매물 장부와 계약서 등을 2시간가량 대조한 결과 업소 주인이 거래 사실과 거래액을 대거 누락하거나 축소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편 연세대 경제학과 이두원(李斗遠) 교수는 “저금리 상황에서 자금이 움직일 출구를 마련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만 단속하는 것은 단속 비용만 많이 들고 효과도 적다”며 “정부는 자금 출구를 만들어 투자를 양성화시켜 부동산 투기 과열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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