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얼마나 심각한가]올 물가 벌써 1.2% 껑충

  • 입력 2003년 3월 4일 19시 44분


코멘트
《한국경제에 총체적으로 ‘빨간 불’이 켜졌다.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내수 및 투자 위축, 물가 및 고용불안, 국제수지 악화, 경제성장률 하락 전망, 외국자금 일부 이탈 움직임 등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걱정되지 않는 곳이 드물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음주쯤에는 경제부처와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하는 긴급 경제조정회의를 열어 현상을 진단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 한국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먹구름’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내수 꽁꽁…하반기까지 먹구름 이어질수도▼

올 들어 내수경기 위축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문제는 위축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정부가 거품(버블)을 없애기 위해 가계대출을 죄고 강남 아파트 가격의 이상 급등세를 잡은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이미 내리막길을 걷던 경기하락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여기에 ‘이라크전쟁 변수’가 길어지고 북한 핵문제까지 불거졌다. 주가도 약세를 면치 못한다. 이에 따라 재래시장 중소기업 등 현장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춥다”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1월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7% 줄었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 투자 증감률은 17개월 만의 최저치였다. 체감경기에 이어 지표경기도 내림세로 돌아서는 모습이 뚜렷하다.

1월 산업생산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6% 높아졌으나 지난해 12월의 증가율 9.5%와 비교할 때 절반에도 못 미쳤다. 더구나 계절적 요인을 뺀 전월 대비 산업생산지수는 ―1.1%였다.

소비자 경기의 바로미터인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신장률도 추락하고 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의 2월 매출은 한달 전보다 10%가량 격감했다. 백화점과 할인점 이마트 매출을 함께 집계하는 신세계도 2월 매출이 10.1% 줄었다.

재정경제부 강호인(姜鎬人) 경제분석과장은 “미국-이라크전쟁 지연, 북한 핵문제, 미국 등 세계경기침체 지속 등 외부여건이 더 나빠지면서 당초 예상했던 한국경제의 ‘상반기 침체, 하반기 회복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무역수지 휘청…적자 계속 늘어▼

1월 무역수지는 8700만달러 적자를 보이면서 3년간 계속돼 온 월별 기준 흑자 행진이 끝났다. 2월에도 3억1700만달러 적자를 보여 5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2개월 연속 적자를 냈다. 또 지난해 12월 경상수지는 6억5000만달러 적자를 보여 8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작년 말 산업자원부는 2003년에 수출 증가율이 낮아지기는 하지만 흑자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올 1월부터 바로 적자로 돌아선 뒤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2월 수입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32.0%로 2000년 9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올 들어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원유 도입 단가가 급등하면서 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입 증가액만도 5억1000만달러에 이른다. 1, 2월 두 달간 수출증가율이 작년동기대비 25.9%와 22.5%지만 유가급등 앞에 속수무책인 셈이다.

산자부는 앞으로도 고유가와 함께 미국-이라크 전쟁, 북한 핵문제, 환율 불안 등 국제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불안요인이 많다고 걱정하고 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장바구니 불안…소비자물가 상승 18개월만에 최고▼

물가와 실업률은 올들어 모두 올라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아직은 많지만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2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9% 올랐다. 이는 18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전월비로는 0.6% 올라 1, 2월 누적상승률이 1.2%에 이르렀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농축수산물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공공요금이 내렸는데도 유가 불안 때문에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미국과 이라크간 분쟁이 빨리 해소되지 않는 한 유가가 계속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정세는 당초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미국과 이라크간 갈등이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한편 1월 실업률은 3.5%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0.3%포인트 낮아졌지만 10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20대의 구직난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대는 전월보다 실업자가 6만6000명 늘어 실업률이 20개월만에 최고치인 8.1%를 나타냈다.상용근로자는 늘어난 반면 자영업주와 무급 가족종사자수가 2만2000명이나 줄어든 것도 특징. 이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대기업에 비해 내수 침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외국인 투자 주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12월 3일 경제분석가들을 인용해 한국이 2003년에도 6%대의 성장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매체들도 대부분 한국의 앞날을 밝게 전망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회복이 더뎌지고 북한 핵문제가 심각해지면서 2월부터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외신 보도가 줄을 이었다. 신용평가회사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의 경제전문조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5.3%에서 4.6%로, 다시 4.1%로 1.2%포인트나 떨어뜨린 것.

미국의 뉴스방송인 CNN은 지난달 27일 국제적 금융기관인 HSBC의 조사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4%대에 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산하 지역경제조사국도 지난달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5.6%에서 5.0%로 낮췄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진전이 없는 한 4월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움직임이다.

한국 경제에 대해 어두운 전망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주식투자가들도 5개월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외국인들은 지난달 증권거래소시장에서 5조9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으나 이보다 6465억원 많은 5조655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씨티은행 오석태(吳碩泰)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여전히 중국 다음으로 고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외국인 투자가들도 잘 알고 있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전문가 해법…규제 더 풀어 투자 촉진해야▼

경제전문가들은 현재 경기침체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동감한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 경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선진국 경기침체와 미국-이라크전쟁 가능성, 국제유가 급등 등 외부적 요인이 많기 때문. 적자국채 발행, 금리 추가인하, 통화량 증가 등 섣부른 경기부양 대책은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대책마저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기업들의 왕성한 활동이 절실하며 기업의 기(氣)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메릴린치증권의 김원기 상무는 “정부가 사용하는 수단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정부는 우선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를 없애주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상무는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는 새 정부의 성격상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보다 간섭이 더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며 “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규제완화와 법인세 인하 등으로 ‘기업하기 좋은 정부’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원의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대부분의 경제기관들이 공식적으로는 발표를 하고 있지 못하지만 올해 5%대 성장을 어둡게 보는 시각이 많다”며 “자칫 한국경제가 더블딥(경기가 잠시 회복했다가 다시 침체하는 현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권 수석연구원은 또 “통화 등 거시정책 기조는 쉽게 바꿀 수 없겠지만 부문별로 가계대출 억제를 완화하는 등 미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