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 처벌감수…'나 하나로 끝났으면…'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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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최태원 SK㈜ 회장이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서울지검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원대연기자
21일 오전 최태원 SK㈜ 회장이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서울지검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원대연기자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이 검찰 수사가 SK그룹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21일 검찰에 출두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면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좋은 지배구조를 갖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반성의 시간’이란 혐의를 인정하고 처벌을 감수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또 수사를 맡고 있는 부장검사에게 “기업을 운영할 부하 직원들은 다치지 않도록 해달라”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역시 자신의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발언인 셈.

이는 검찰의 그룹 전체에 대한 수사 확대 가능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게 재계 등의 분석.

검찰은 SK글로벌 연수원에서 압수한 박스 250개 분량의 회계장부 등 자료를 전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 과정에서 수사단서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검찰 관계자는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최 회장은 자신이 혐의를 순순히 시인하고 무거운 처벌을 감수함으로써 수사팀이 정상을 참작, 수사를 확대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

특히 회계장부 조사는 분식회계 확인이나 비자금 추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 회장이 더욱 애를 태우고 있는 듯하다.

대형 금융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수사를 통해 분식회계가 드러나면 회사는 완전히 끝장난다”고 말했다.

따라서 SK그룹측이 기자들에게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싶지 않으니 제발 조용히 넘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한 배경도 이와 맥락이 닿아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의 뜻대로 검찰 수사가 쉽게 종결될지는 미지수다.

재계에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날 곳 없다’는 말이 기업의 회계장부만큼 잘 적용될 곳이 또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일단 수사를 하게 되면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회계장부 조사를 공식 천명한 검찰이 이를 덮어두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수사 확대에 따른 부담도 크다.

대검의 한 검사는 “수사 확대를 결정하기 전에 다른 그룹과의 형평성 문제와 가뜩이나 위축된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장부를 샅샅이 뒤지는 것과 같이 수사팀이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아무튼 세 번째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최 회장이 이번에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사위인 최 회장은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스위스 비밀계좌에 외화를 빼돌린 혐의로 94, 95년 두 차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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