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부총재 "4000억 계좌추적만 하면 행방규명 한달도 안걸려"

  • 입력 2003년 1월 19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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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박상배(朴相培) 부총재가 현대상선 4000억원 대북송금 의혹을 정치권이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정치권이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서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박 부총재 발언의 뼈대. 산은은 단지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되돌려 받았을 뿐 대북 송금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현 정부의 의혹을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으나 과연 검찰이 어느 정도까지 진실을 가려낼지 주목된다.

▽진실은 이미 나와 있다?〓박 부총재는 “(현대상선) 계좌만 추적하면 돈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갔는지 아는 데 한달도 안 걸린다”고 말했다. 즉 현대상선이 자금을 세탁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이 조사하면 금방 알 수 있다는 것.

물론 현대상선이 4000억원을 대출받은 2000년 6월 이후의 관련계좌를 추적하면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것.

한나라당은 4000억원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보내졌다는 의혹을 규명하려는 중이고 현 정부 및 현대그룹측은 현대계열사 지원에 사용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새 정부와 검찰의 수사 의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면 4000억원 대출 경위, 한광옥(韓光玉)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근영(李瑾榮) 당시 산은 총재에게 대출 압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는 구 동교동계 핵심세력에 대한 전면수사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미묘한 파장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물론 노 당선자의 의지가 중요한 대목이다.

▽산업은행은 단지 조연이었나?〓박 부총재는 “현대상선이 무너지면 당시 지급보증을 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석유공사까지 힘들어졌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4000억원 대출은 순전히 국가경제를 위해 이뤄졌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출심사 때 깐깐하기로 이름난 산은이 국가경제를 위해 감독기관이나 청와대와 상의하지 않고 절차와 규정을 생략하면서까지 4000억원이라는 거액을 빌려줬다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다.

정건용(鄭健溶) 산은 총재도 작년 국정감사에서 “이사 전결로 4000억원 당좌대출을 해준 것은 대출관행상 흔치 않은 일”이라 증언했다. 금융계에서는 박 부총재의 발언은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산은이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희망사항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산은은 여전히 의혹의 중심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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