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방담]본보 경제부 기자들이 내다본 ‘새해 경제 ’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6시 54분



《올해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까.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여러 개혁 정책이 추진될 전망이다. 미-이라크 전쟁 가능성 등 나라 밖 변수도 수두룩하다. 동아일보 경제부 시니어 기자들은 2003년 경제상황을 전망하기 위해 각자 며칠 동안 전문가들을 만나 밀착 취재했다. 취재수첩을 꺼내 들고 분야별 새해 경제를 점검했다.》

-경기가 어떨지가 최대 관심사입니다. 전반적인 경기는 하반기가 되어야 좋아지리라는 것이 여러 연구기관들의 전망입니다. 이른바 ‘상약하강(上弱下强)’입니다. 올해 초반에는 북한핵 문제, 이라크 사태 등 경제외적 변수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차기 정부의 개혁정책이 화두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여러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개혁에 감히 반대할 처지가 안됐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봅니다. 우선 개혁정책과 경제계가 충돌할까 우려됩니다. 더구나 경기는 하강국면입니다. 섣부른 개혁책으로 경기가 더욱 가라앉으면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초기에 어떻게 물꼬를 잡아가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생산의 견인차인 기업들의 활력을 기대합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주요 대기업들은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다질 것입니다. 7조원의 내부 유보금을 확보한 삼성전자를 비롯해 LG SK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은 해외 투자를 더욱 늘리고 세계 기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기업 경쟁력은 아직 취약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맹렬한 추격과 함께 기업들간의 차별화가 촉진될 것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기업들은 올해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재벌 개혁’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재계의 최대 관심사겠지요. 재계는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사법경찰권 부여, 상속 증여세의 완전 포괄과세 등의 공약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새 정부가 ‘분배’를 앞세울 경우 각 이해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노사갈등이 전면에 부상할 수도 있습니다. 주5일 근무제 추진이나 재벌개혁 등을 둘러싸고 기업과 시민사회 간의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증시상황은 어떨까요.

-증시는 다시 한번 1,000 돌파를 시도할 것입니다. 다만 미-이라크 전쟁과 북한핵 문제 등 장외 악재가 겹치는 1!?4분기(1∼3월)에는 지금보다 더 떨어져 600선 안팎까지 조정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장외 악재가 해소되고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2!?4분기(4∼6월)부터는 오름세를 타 3!?4분기(7∼9월)에 1,000 돌파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새해 증시를 주도할 테마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신도시 관련 테마가 1!?4분기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또 무선통신, 유!?무선인터넷, 휴대전화장비, 인터넷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신기술 관련 회사가 1년 내내 증시의 화두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증권사들은 영업환경이 좋지 않을텐데요. 수익모델이 떨어지는 중소형 증권사들은 통폐합이 예상됩니다. 증시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1!?4분기에 합병이나 청산을 발표하는 증권사가 다수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간인들이 떠안고 있는 빚더미가 걱정입니다. 작년 11월 말 은행가계대출 잔액은 220조원이었습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이 129조원입니다. 신용카드 연체도 심각합니다. 신용불량자가 260만명이고 카드신용불량자는 142만명입니다. 민간신용위기 처리는 북한핵 만큼이나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은행 합병은 계속 될까요.

-조흥은행 건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전망입니다. 신용카드사들 가운데 일부는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부분의 카드사가 적자를 보였고 연체율도 두자릿수에 이르고 있습니다.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한 회사는 퇴출되거나 남의 손에 넘어갈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정보기술(IT) 분야는 올해에도 ‘효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IT산업이 확고한 성장엔진으로 자리잡으려면 휴대전화기, 반도체, PC 중심의 수출 아이템 다변화가 시급합니다.

-올해는 3세대 IMT-2000 서비스가 본격 선보입니다. 이에 따라 휴대전화 시장의 무게중심도 음성통화 위주에서 무선인터넷 등 데이터 통신 분야로 빠르게 옮겨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초고속인터넷망과 휴대전화망 등 IT 인프라의 확산에 힘입어 새해에는 디지털가전, 홈네트워크, PDA나 스마트폰 같은 포스트PC 시장이 활성화될 전망입니다.

-집값은 지난해와 같은 폭등세는 없을 것입니다. 작년, 재작년의 집값 폭등은 외환위기 이후 2년간 주택건설 물량이 크게 줄어든 게 직접적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주택 공급이 크게 늘고 2년간 폭등세가 나타나면서 집을 살 능력이 있는 수요자는 상당수 집을 마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 의지도 강력합니다.

-국지적인 청약과열과 투기우려는 남아있지 않을까요. 행정수도 이전, 신도시 건설, 강북 뉴타운 개발, 연말에 개통될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 등 호재가 있는 지역은 개발특수에 따른 가격 상승이 예상됩니다.

투자자들은 개발특수가 있는 지역의 아파트나 올해 본격적으로 나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토지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업이 잘 돌아가면서 일자리가 늘면 좋겠습니다. 경제정책의 초점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기업의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규제를 줄이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리〓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기업들의 새해 경영전략▼

새해 한국 기업 앞에 놓인 경영 환경은 ‘안갯속 흐림’이다. 국내외 경제를 둘러싼 불투명한 변수들로 기업들은 올 한해 불안한 항해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그같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들은 내실을 다지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도전에 뛰어들 전망이다.

▽안전 중심의 경영〓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경기 하강세는 올 상반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움츠러든 소비심리에다 건설 등 실물경기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는 2!?4분기(4∼6월)는 지나야 회복세가 기대된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올해 기업의 수익성은 다소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 기업들은 무엇보다 ‘안전 중심의 경영’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상시화된 구조조정은 지금까지의 대규모 매각 인수 등 ‘거시적’ 차원 위주에서 ‘미시적 구조조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전망이다. 즉 내부 비효율성을 수술하는 노력이다. SK가 올해 경영 화두로 설정한 ‘OI(Operation Improvement)’는 ‘운영효율 개선’을 통해 경영 전반의 내부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구매에서 생산 마케팅 물류 등 경영 전반의 효율을 개선하는 것은 기업의 조직을 강하게 만드는 한편 수익성으로도 이어진다. 다른 많은 기업도 이미 활발히 시행해온 ‘6시그마’ 운동 등을 통해 외부 환경의 파고를 견뎌낼 수 있는 체질을 갖추려 하고 있다.

▽미래를 대비한다〓그러나 어렵다고 마냥 움츠러들 수만은 없다. 지난 몇 년간의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체력을 길러온 기업들은 미래에 대비한 투자를 적극 펼칠 전망이다. 다만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확장이 아닌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의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올해 그룹 전체로 작년보다 35% 증가한 8조8000억원의 시설투자에 나서기로 했다고 작년 말 밝혔다. 작년 세전 이익이 전년보다 127%나 늘어난 자신감과 자원을 토대로 기존제품의 고부가가치화, 브랜드 및 디자인 등의 소프트 경쟁력 확대에 나선다. 미래의 과실을 위해 연구개발(R&D)비를 작년보다 16% 늘어난 4조3000억원으로 책정했다.

LG가 총 7조4000억원을 투자키로 한 것도 글로벌 경쟁시장에서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특히 ‘승부사업’과 주력사업 분야에서 과감히 선행투자를 추진할 방침이다. 작년 2조1000억원보다 24% 늘어난 R&D 투자의 80%를 디지털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동통신, 정보전자소재, 생명과학 등 미래 승부사업 분야에 집중키로 한 것도 이런 전략에서다.

주요 대기업들이 불확실한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나서는 것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투자를 대폭 늘려 경쟁사와 차별화를 기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선 우량기업과 한계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변화와 새 바람〓젊음과 변화로 요약되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기업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것이다. 대기업 개혁의 외풍 속에 기업 스스로도 ‘선진 경영’을 가로막는 전근대적 요소의 청산에 나설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변화를 이끌 젊은 주도세력의 새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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