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5년 한국 어떻게 변했나]① 깨진 한국형 성장신화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42분


1997년 12월 3일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오른족)와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정부중앙청사에서 IMF긴급자금지원 이행조건을 담은 정책의항서에 서명하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7년 12월 3일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오른족)와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정부중앙청사에서 IMF긴급자금지원 이행조건을 담은 정책의항서에 서명하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7년 11월16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했다. 닷새후인 21일 한국정부는 IMF구제금융 신청을 전격 발표했다. 이어 12월 3일 밤 한국은 IMF와의 정책의향서에 공식서명, 사회 각 부문에 지각변동을 초래한 ‘IMF 관리체제’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5년.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우리는 ‘IMF사태’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형태의 ‘경제위기’가 재발될 가능성은 없는가. 다섯 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20년 이상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복덕방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IMF 사태’가 안 왔다면 지금쯤 지점장하고 있을 겁니다.”

서울 중랑구 자양동 아파트 인근 상가 안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 LBA제일부동산 정인출 대표(50). 정 대표는 5년 전 이맘 때 ‘눈물의 비디오’로 유명해진 제일은행 명예퇴직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퇴직 후 1년간은 아무것도 못할 만큼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지낼 만하다”고 말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에 큰 충격을 받았던 부인도 가게 일을 거들며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

‘제2의 국치(國恥)’ ‘신(神)이 내린 위장된 축복’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한국의 외환위기. 그 후 한국의 모든 기업과 직장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경쟁과 효율’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표준(글로벌 스탠더드)의 러닝머신에 올라탔다. 체질을 바꿔 벨트속도에 맞추든지, 아니면 나가떨어져야 하는 개방형 시스템에 편입됐다.

▽2002년 한국사회의 ‘풍경’〓위환위기의 충격은 가장 먼저 기업의 연쇄부도와 대량실업으로 다가왔다.

우선 대기업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무너졌다. 외환위기 이전의 30대 그룹 중 절반이 넘는 16개 그룹이 사라졌다. ‘세계 경영’을 외치며 재계서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은 산산이 흩어졌고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 김우중(金宇中) 회장은 오늘도 해외를 떠돌고 있다.

최근 부도와 통폐합의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금융권도 옛날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이달초 부산의 한 지점으로 발령받은 H은행 김동규 지점장(41)은 점심시간이 아깝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최근 나온 저축상품을 팔아야 한다. 직접 전단지를 들고 인근 구청과 사무실을 돌면서 대출세일도 한다. 실적이 나쁘면 지점장 교체 등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

김 지점장은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지점장이라면 거래처 사장을 만나 2시간씩 점심대접을 받고, 호텔사우나에서 느지막하게 나와 대출서류에 도장만 찍고 퇴근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제 까마득한 전설로 들린다”고 털어놓았다. 은행이 망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한국에서 최근 5년간 은행 14개를 포함해 전체 금융기관의 30%인 631개가 사라졌다.

동양사회의 미덕으로까지 여겨지던 ‘평생직장’과 ‘연공서열’의 가치관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 그릇 밥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서울역 앞 노숙자행렬, 아침부터 남산공원을 어슬렁거리던 넥타이부대는 한때 실업자 165만명, 실업률 7.6%까지 치솟았던 대량실업의 상징이다. 이 이미지는 이후 샐러리맨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이들을 무한경쟁의 마당으로 내몰고 있다.

▽경제위기 재발 가능성은 정말 없나〓서울대 정운찬(鄭雲燦) 총장은 최근 외환위기 5주년을 돌아보는 학술대회에서 “한국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실물 및 금융부문의 새로운 환경을 도입하는데 실패했다”며 “조그만 충격이라도 가해지면 경제위기가 재발할 것임이 명백하다”고 경고했다. 외환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했다고 자부해온 현 정부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었다.

외환보유고, 환율, 금리 등 거시경제지표가 97년 외환위기 때와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경제의 ‘현주소’가 낙관할 수 있는 상태인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특히 최근 들어 ‘제2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가계부채 총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70%수준인 400조원에 이르면서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5년 전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됐던 정경유착의 폐해는 현 정권과 현대그룹과의 유착이나 각종 벤처기업을 둘러싼 ‘게이트’에서 드러났듯 새로운 형태로 곪아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업정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조윤제(趙潤濟)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판명 난 빅딜은 물론이고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상당수의 공정거래위원회 정책, 국세청 세무조사는 개혁의 이름을 빌렸을 뿐 감정적인 ‘대기업 때리기’였다”고 꼬집었다.

투명하고 일관된 원칙이 아니라 권력 핵심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이른바 ‘개혁작업’은 우리 사회에 ‘개혁’이란 표현에 대한 거부감만 키워놓았다는 지적도 많다. 그 내용의 한계와 함께 개혁주체세력을 자임(自任)한 정권 핵심부의 잇따른 부정부패 및 도덕성 실추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새로생긴 말-풍속

'아나바다'운동 큰 호응-'I am fired'등 풍자 유행

‘IMF 관리체제’는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수많은 ‘신조어’를 낳았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운동이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일부 계층은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를 늘려 한 외국잡지가 “한국에서 IMF는 ‘I am forgetting(나는 잊었다)’이란 뜻”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지금은 “내수가 IMF 졸업의 일등공신”이라는 게 대다수 외국 언론의 평가다.

IMF 관리체제로 인해 생겨난 말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실업과 관련된 것. IMF는 ‘I am fired(나는 해고됐다)’, ‘I am a fly(나는 파리목숨)’의 줄임말이라는 식의 풍자가 줄을 이었다. 직장을 잃은 30, 40대들이 대거 불문(佛門)에 귀의, ‘IMF 행자(行者)’라는 말도 생겨났다.

언제든지 직장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내 사업을 일궈 부자가 되자는 ‘부자아빠’ 증후군을 확산시켰다.

벤처거품 붕괴와 함께 ‘부자아빠’ 꿈이 깨지자 자녀와 부인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가 급증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자녀만큼은 일찍 국제화된 교육을 받게 하자는 것.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로 살다가 나중에 부인과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례를 빗대 ‘펭귄아빠’라는 말도 생겨났다.

100여년 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이야기한 ‘80 대 20의 법칙’도 주목을 받았고 여러 분야에 응용됐다. 이 법칙의 원래 의미는 국민 20%가 80%의 부(富)를 차지한다는 뜻.

많은 기업이 파레토의 법칙을 ‘20%의 고객이 80%의 수익을 창출한다’, ‘20%의 직원이 나머지 80%를 먹여 살린다’는 뜻으로 해석, 고급마케팅을 강화하고 연봉제를 확산시켰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거꾸로 간 공공개혁

정부조직 커지고 경제自由度 추락

“민간 기업들은 내실과 안전성 위주로 경영 관행을 개선했으나 정부시스템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공기업은 ‘무늬’만 민영화했고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은 오히려 늘었다.”(김석중·金奭中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 20%대에 불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최근 50%를 넘어서는 등 노동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했다. 정부는 낙하산 인사 근절과 같은 작은 개혁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이선근·李善根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장)

IMF 관리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된 4대 개혁 가운데 공공개혁은 성과가 가장 미진한 부문으로 꼽힌다.

현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개혁의 주요내용은 △정부조직 개편 △인력 감축 △개방형 직위제 및 성과급 보수제 도입 △공기업 민영화 및 자회사 정리 △공기업과 산하기관 경영혁신 등이다.

정부조직은 1998년 2월 첫 개편에서 17부2처16청1외국으로 출발했으나 99년 5월 17부4처16청, 2001년 1월 18부4처16청으로 늘었다. 공무원수는 계획에 맞춰 줄여나가고 있으나, 개방형 직위제와 성과급 보수제는 전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개방형 직위에 대한 민간인 임용률은 13.6%에 불과하다.

공기업 민영화 일정은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추진속도가 급속하게 떨어졌다. 공기업과 산하기업 경영혁신은 현정권 스스로 ‘걸림돌’ 노릇을 하고 있다. 18개 주요 공기업 사장을 살펴보면 여권(與圈) 및 군 출신의 낙하산 인사와 지역편중이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보다도 심화됐다.

민간에 대한 간섭과 규제는 나아진 것이 없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도 순위는 1997년 21위에서 올해 52위로 추락했다.

행정개혁시민연합이 올 2월 행정학회와 시민단체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8%가 행정개혁이 잘못됐다고 응답했다. 또 60% 이상은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고 답변했다.

현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팀장을 지낸 박개성(朴介成) 엘리오앤컴퍼니 대표는 “기업경영에서 재무 두뇌 신뢰 측면에서 하나라도 위기신호가 오면 심각한 상황”이라며 “불행히도 한국의 정부시스템에는 이 세 가지 징후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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