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권희 월가리포트]잇단 해고에 우울한 11월

  • 입력 2002년 11월 13일 18시 17분


찬바람은 부는데 고용이 늘어날 기미가 없다. 이게 미국의 요즘 근심거리다.

기업 경영자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원탁회의’가 150명의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썰렁하다. 60%가 내년에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종업원수가 줄어들 것 같다고 대답했다. 고용을 늘릴 것 같다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종업원들, 기업들, 미국경제 전체에 심각한 걱정거리”라고 존 딜런 원탁회의 의장은 지적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과 ‘신경제’의 상징이던 미국 실리콘밸리가 특히 힘겨워한다. 핵심지역인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10월 실업률은 7.9%로 198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치 6.4%에 비해 훨씬 높다. 게다가 2000년 12월 이곳의 실업률이 1.3%였던 데 비하면 요즘 불황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인 어드밴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스(AMD)는 지난주 또 한 차례의 대량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해고인원은 밝히지 않았지만 ‘대단히 많은’ 수가 될 것이라고 한 간부가 언론에 전했다.

실리콘밸리 인근에 있는 휴렛팩커드사는 컴팩 인수를 계기로 2003년 말까지 1만5000명을 줄일 계획이다. 7월 말까지 474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최근 1800명을 더 자르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용구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종업원들에게 통지했다.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요즘 매달 2, 3건의 대형 해고 발표가 나왔다.

실물경기를 반영해 증시가 좋지 않으니 월가도 편하지 못하다. 지난주 미국 최대 증권회사 메릴린치가 개인고객그룹의 지원부서 인력 400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작년 말 1만6400명이던 중개인을 9월 말까지 1만4600명으로 줄인 뒤에 나온 추가계획이다.

모건스탠리는 12일 개인투자자 담당 중개인을 5%(680명) 더 줄인다고 발표했다. 월가의 관계자는 “웬만한 불황이라도 돈을 벌어오는 중개인은 자르지 않는 게 보통인데 불황이 깊어지면서 고정비용 지출이 큰 중개인에 손을 대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뉴욕증시 주가가 이따금 오름세를 보여도 월가 전문가들이 흥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깨어나지 않는 고용동향 때문이다. 주가가 2.3% 뛴 12일 나스닥 시장에 대한 언론보도도 “주가는 올랐지만…”이라고 시작하고 있다.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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