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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5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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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對北) 경협의 최고전문가로 꼽히는 유완영(兪琓寧·39·사진) IMRI 회장은 “최근의 북한경제개혁은 실제 필요성에서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나온 것”이라며 “화폐와 금융개혁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컴퓨터와 TV 모니터 수출업체인 IMRI는 1998년 평양에 남북합작으로 모니터조립공장을 세우면서 국내 전자업계 최초로 자체 기계설비를 설치했다. 이후 매년 공장을 늘려 4개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80년대 말 러시아 유학과 90년대 미국 내 북한투자컨설팅사업으로 북한인맥을 쌓게 된 유 회장은 많은 국내 중소업체 대북 투자의 산파역할도 하고 있다.
유 회장은 북한이 쌀값 등 생필품 가격을 인상하고 환율을 현실화한 가장 큰 이유는 달러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과 거래를 하려면 달러는 반드시 외화바꾼돈표로 바꿔야 했어요.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호텔과 음식점 등 일반상점에서도 달러로 거래가 가능해졌습니다. 북한기업이 우리 쪽으로 송금을 위해 외화바꾼돈표를 달러로 바꾸려 해도 중앙은행에서 바꿔줄 달러가 없었거든요.”
북한의 최근 개혁조치는 북한주민들이 공식 부문과 암시장에서 가격과 환율차 때문에 장롱 속에 감춰두기만 할 뿐 내놓지 않는 달러를 흡수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30여차례나 북한을 다녀온 유 회장은 “북한사람들은 적어도 가구당 200∼300달러씩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물가인상 조치가 결국 북한주민들이 갖고 다녀야 하는 돈의 부피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고액권 화폐 교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점친다. 또 외환결제 및 대출업무 등 금융시스템의 변화도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유 회장은 “북한정부가 이미 총련 산하 신협을 통해 선진금융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IMRI는 북한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을 활용해 일본어를 7개 국어 음성으로 전환해주는 개인휴대단말기(PDA)용 칩을 일본에 수출 중이다. 올해 6월 평양에 세운 단열재용 스티로폼 공장은 대부분 수출이나 남한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는 남북합작사업과 달리 100% 북한 건축 내수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대북한 투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뛰어든다면 낭패를 보기 쉬워요. 저희는 국내사업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투자하고 회수된 자본만큼 꾸준히 재투자를 하면서 인맥과 신뢰를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습니다.”
유 회장이 대북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자부하는 것은 노무관계에 대한 노하우다. IMRI는 한국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북한노동자들에 대해 매년 2, 3 차례 기술교육을 직접 실시한다. 이 과정에 전체 임직원 180여명 중 40% 가까이가 북한을 다녀왔다.
유 회장은 또 북한 관계자들과의 꾸준한 접촉과 대화를 통해 북한 내 공장이 한국 산업자원부의 품질인증을 위한 실사를 받도록 만들었고 공장 내 작업지시도 한국식으로 바꿔놓았다.
“북한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사람관계가 관건입니다. 정부간 공식대화로 안 풀리는 문제도 민간차원에서 먼저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