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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26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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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의 나이라곤 믿기지 않는 강한 체력을 과시하는 임사장이 아파트 신축 현장을 방문하는 날이면 직원들은 진땀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15층 이상´되는 신축 아파트 계단을 한걸음에 올라가는 임사장을 따라가기부터 여간 벅찬게 아니다. 게다가 옥상에서 가쁜 숨을 고르려고 하면 임사장은 숨돌릴 틈도 안주고 이것 저것 주문을 한다. 불평보다는 ˝아니, 저 나이에 어디서 저런 체력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낮에만 철인인 게 아니다. 업종 특성상 술자리가 많은 밤에도 폭탄주 20잔 이상 마시고도 끄떡없는 술실력으로 상대방을 녹다운시킨다.
건설업계에서 미약한 존재였던 롯데건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는 1998년 롯데건설 사장으로 취임한 임사장의 이같은 강철같은 체력이 바탕이 됐다.
롯데건설 한 임원은 ˝엽기적인 체력˝이라고 한마디로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체력이 있어야 사장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사양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SK그룹의 손길승(孫吉乘)회장의 ´엽기´도 그에 못잖다. 젊은 시절부터 ´일 중독자´로 이름이 난 그가 언젠가는 10일 이상 잠을 안자고 일에 매달리다 얼굴에 종기가 생겼다. 일벌레 손회장은 그러나 병원으로 갈 시간이 없었다.그래서 종기를 없애려고 얼굴에 인두질을 했다고 한다.
샐러리맨의 꿈인 사장. 사장이 되려면 그처럼 ´독종´이 돼야 할까. 아니면 사장이 되면, 독종이 되는걸까.
체력이 됐든, 뭐가 됐든 사장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괴력의 소유자=지금은 몰락했지만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 회장은 ´상식을 뛰어넘는 식욕´으로 유명했다. 그는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비즈니스 상담을 겸한 식사를 한두시간 간격으로 연달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때마다 음식을 남긴 적이 거의 없이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고 한다. 김회장과 중국식 풀코스 회식에 잇달아 합석했던 전직 대우 임원은 ˝김회장이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 풀코스를 두시간만에 두 번 해치우는 걸 보니 ´괴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한용외(韓龍外)생활가전 총괄 사장이 최근 한 저녁모임에서 보여준 자기 통제력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스무잔이 넘는 폭탄주를 마시던 그는 한 참석자가 질문을 던지자 수첩을 꺼내 적고는 ˝몇 일, 몇 시에 답변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한사장은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전화를 주더라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회삿일 생각=보통 기업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러나 사장들의 일과표는 근무시간표와는 전혀 별개다. 삼성에버랜드 허태학(許泰鶴) 사장의 평균 근무시간은 하루 14시간. 그러나 회사에 없다고 회사일을 잊는 건 아니다. 허사장은 ˝퇴근 후 잠자리까지 가져가는 고민은 예외없이 회삿일˝이라고 말했다.
손길승회장은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잠잘 때도 꿈속에서 그룹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니 하루 24시간 전부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고 털어놓는다.
▽혹독한 자기계발=임승남사장처럼 술을 잘 마셔야 사장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술 한잔에도 취하는 현대캐피탈 이계안(李啓安)회장은 왕성한 학구열로 그런 ´핸디캡´을 이겨낸다. 새벽 4시반이면 일어나서 책을 잡아 바쁜 최고경영자 생활에도 한달 평균 30권 가량의 책을 읽는다. 젊은 시절에는 차를 몰면 책 볼 시간이 없다며 지하철을 이용했을 정도다. 요즘에도 하루에 한 권 가량 책을 뗀다. 책상에 앉아서 볼 책, 침대에 누워서 볼 책, 차안에서 볼 책 등을 스타일별로 나눠서 손에 쉽게 잡히는 위치에 몇 권씩 둔다.
삼성SDS 김홍기(金弘基) 사장이 전공(경영학)과 무관한 IT 분야에서 4년째 CEO를 하고 있는 것도 독서광인 덕분. 해외 출장이 없는 주말이면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10∼15권가량 손에 잡히는 대로 사서 읽는다.
진대제(陳大濟)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사장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갈 때 절대 잠을 자지 않는다. 노트북을 열고 바이어 미팅 자료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파워포인트로 작성한다. 평소 차량으로 이동할 때도 책을 보거나 해외 법인에다 전화를 하는 등 한시도 쉬지 않는다.
올림푸스한국의 방일석(方日錫)사장은 영어와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실력파. 주례 회의때면 직원들에게 세계 주가 흐름이나 반도체 시장 현황에 대해 브리핑한다. 그 정도면 될 법도 하건만 최근에는 중국사업을 위해 아침에 중국어를 또 배우고 있다.
사장들의 이런 기질은 타고 난 것일까. 타고 난 것도 있지만 혹독한 자기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다. 임승남사장이 철인이 되기까지는 지난 20년 넘게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집에서 1시간 정도 워킹머신과 줄넘기, 아령체조 등의 운동을 거른 적이 없는 자기통제가 있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