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질서 새설계]역동적 개방경제가 '한국號'살길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7시 05분


지난해 9월 미국 테러사태 이후 새로 형성된 국제질서는 ‘한국 경제호(號)’에 좌초의 위협과 재도약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국제정세 불안이 지속돼 지구촌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 경제는 작년 못지않은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반면 경제적 다극화(多極化)의 진전과 지식기반 경제의 확산, 국가간 공존 및 협력 모색 등과 같은 흐름들은 한국 경제가 돌파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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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는 2002년 세계정세 전망과 한국경제의 전략을 다룬 ‘새질서 새설계’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비전으로 ‘개방적 역동경제’를 제시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한 한국이 활력을 유지하면서 세계 시장의 주역으로 뻗어나갈 최적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로 △성장 잠재력의 복원 △한국 특성에 맞는 경제시스템의 구축 △사회적 통합과 대내외 균형 달성 등을 꼽았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4년만에 한국은 비슷한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은 신흥시장국 가운데 가장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경제의 체질은 오히려 허약해진 측면이 적지 않다. 정부 주도의 개혁을 통해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지만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97년 이후 30대 기업집단에 속했던 44개 그룹 가운데 16개 그룹이 축소되거나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반면 외국자본 기업들의 진출은 더욱 활발해졌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대형 부실기업의 처리가 지연되면서 잠재적인 기업 부실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재무 건전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과 투자 마인드의 싹을 잘랐다. 신규투자 자제, 비상시에 대비한 현금 확보, 내실 다지기 등 ‘수비형’ 경영전략이 최고경영자(CEO)의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이 첨단기술 개발에 소홀한 틈을 타 중국 등 후발국들은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어떤 산업을 키울 것인가〓“앞으로 5년, 10년 뒤 반도체에 이어 한국 경제를 먹여살릴 차세대 산업을 찾아내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각 계열사가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미래 주력업종을 발굴하라고 독려한다.

LG 구본무 회장은 “핵심 원천기술의 개발에서 뒤처지면 기업의 생존조차 불투명해질 것”이라며 연구개발(R&D)을 그룹 경영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 “농부가 종자를 소중히 여기듯 기업인들도 기술력 확충에 힘써달라”고 당부한다.

역동적 개방경제의 전제조건은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통하는 기술과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주요 그룹의 CEO와 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가 핵심산업과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수비형 경영에 안주해서는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기존 주력산업에서 축적한 기술적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분야 가운데 시장확대 가능성과 파급 효과가 큰 업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자상거래 정밀화학 바이오 나노 패션 시스템산업 등이 이런 유망업종으로 꼽힌다.

▽경제 주체의 역할분담〓정부의 최대 과제는 성장동력 창출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조성이다.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계층간, 지역간, 이익집단간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정책 통합 및 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시장의 힘이 커진 현실을 받아들여 민간 부문의 자율 기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제주체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세계화에 동참하고 세계경제의 지역화에 대응해 중국 일본 등과의 동북아 경제협력을 주도할 책무도 갖고 있다.

기업들은 신산업을 발굴해 외환위기 이후 소홀했던 기술개발과 투자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대다수 국내기업들은 고유의 기술력과 브랜드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지 못하면 국제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중소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공존하는 기업 생태계 모델의 구축도 시급하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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