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관리실태]부실기업 대주주 주머니만 채운꼴

  • 입력 2001년 11월 23일 19시 12분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공적자금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고 무너진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150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입했지만 일부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부실화시킨 대주주나 경영자가 빼돌린 재산을 미국처럼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검찰 국세청이 철저하게 추적해 받아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는 공적자금〓예금보험공사 조사 결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 1400억원을 해외로 빼돌렸으며, 고합그룹 장치혁 전 회장도 시가로 90억원가량을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합은 여러가지 불법행위로 금융기관에 4118억원이나 손실을 입혔다.

경기 파주시 파주신협은 11월초 고객 돈 150억원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손해를 보고 파산 위기에 빠졌다. 파산하면 1200억원에 이르는 예금의 상당부분을 공적자금으로 대신 물어줘야 한다. 공적자금 회수업무를 하는 자산관리공사 직원 9명은 24억2700만원이나 횡령했다.

여기에 금융사고로 인한 피해액은 올 상반기에만 1200억원에 이른다. 민주당 정세균(丁世均) 의원은 99년부터 올 6월까지 금융사고액은 59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중 상당액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은행(1344억원) 서울은행(283억원)에서 발생했다. 공적자금이 10조원이나 투입된 한빛은행에서는 직원이 104억원을 횡령해 달아나기도 했다. 대한생명에서도 직원 7명이 45억원을 빼돌리는 사고가 있었다.

▽사전·사후관리 제대로 해야〓공적자금이 새는 이유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부실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데다 돈을 넣은 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금융연구원 이동걸(李東傑)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예금보험공사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정리신탁공사(RTC) 등이 합동으로 부실책임자를 가려내 그들이 빼돌린 재산을 철저하게 추징한다”며 “한국에서는 부실책임을 따지지 않고 돈을 쏟아부어 재산은닉과 금융사고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보는 파산했거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30개 회사의 전 현직 임직원에 대해 내년 말까지 재산 빼돌리기 등을 조사할 계획. 그러나 조사가 예보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데다 관련자들이 대부분 현직을 떠났고 관련서류도 찾기 힘들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예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분기별로 경영상태를 점검하는 등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정상화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행태를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회수도 지지부진〓9월말까지 회수된 공적자금은 36조7000억원. 투입금액의 24.7%에 불과하다. 게다가 예금대지급(20조원)은 회수가 불가능하고 출자(53조원) 및 출연금액(12조원)도 제대로 회수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민영화하고 대한생명 등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관리위원회 위원들이 ‘헐값매각 시비’에 휩싸이기를 꺼려해 제대로 팔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부터 갚아야 할 공적자금 이자만 해도 42조2000억원이나 된다.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음에 따라 원리금을 갚기 위해 세금이 더 쓰여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