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개위 민간위원 반발배경]"자율규제 우선" 원칙 어겼다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33분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이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의 신문고시(告示) 운용 방침에 반발하는 것은 고시제정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13일 열린 규개위 본회의에서는 ‘자율규제 우선’ 원칙이 주요 합의사항이었다. 2년 전에 없앤 신문고시를 되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규개위원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율규제기구에 이 문제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규개위원들의 이런 순수한 생각은 오산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고시 운용방침과 절차를 잘 파악하지 못한 민간위원들이 공정위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따라준 것이다.

▽공정위의 상시 간여 가능〓공정위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말을 바꿨다. 규개위 합의사항과 달리 공정위 자체판단에 따라 신문협회 요청 없이도 수시로 개입해 직권조사를 벌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규개위는 고시 본문 끝 부분에 ‘신문사나 신문협회가 자율규약을 만들어 이를 시행할 경우 공정위의 고시집행보다 우선 적용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7월1일 고시가 비록 부활되더라도 자율규제를 할 경우 공정위가 ‘감 놔라, 배 놔라’하지 않고 업계의 자율규제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그렇다면 고시는 필요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대목이다.

규개위 공동위원장인 강철규(姜哲圭·경제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 점을 이날 회의 직후 기자 브리핑에서 누누이 강조했다. 고시를 통해 신문시장을 법적으로 얽어매는 것보다 자율규제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규제개혁 취지에도 맞다는 것.

규개위의 한 민간위원은 “고시제정 여부를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이 2년 전에 없앤 고시를 만들려면 ‘사과고시(謝過告示)’부터 내놓아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비난이 만만찮았다”며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고시를 살려주기로 결정한 것은 자율규제 우선이라는 원칙을 따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시제정 때부터 예견된 것〓이처럼 공정위와 규개위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는 것은 무엇보다 신문고시 적용과 개입근거에 대한 판단이 전적으로 공정위 손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알아서 판단하고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므로 신문시장의 거래질서가 어떤지, 또 공정위가 언제 들어가야 할지 여부에 대해 공정위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97년 신문고시가 있었을 때도 대부분의 집행은 신문협회가 하고 중요한 정책판단과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같은 징계권한은 공정위가 갖고 있었다. 즉 이번에 부활되는 고시에 이런 자율규제 우선 원칙을 집어넣어도 공정위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광범위하므로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신문협회 자율규약이 공정위 고시와 일치하는지, 또 협회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언제든지 돋보기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공정위 말대로라면 신문업계 자율단체인 신문협회는 공정위의 ‘수족(手足)’이 되고 공정위는 신문협회를 통해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총독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율규약 제정 때부터 신문협회와 마찰 불가피〓공정위 방침대로 한다면 자율규제기구의 역할에 대해 신문사들이 일치된 견해를 모으기가 어렵다. 자칫하다간 공정위가 칼날을 뒤에서 움켜쥐고 협회는 신문사들을 상대로 악역(惡役)을 도맡아야 한다. 자율규약 마련도 진통이 예상되지만 운용과정에선 공정위와 수시로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김일섭(金一燮) 한국회계연구원장은 “신문사들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신문협회도 인식을 같이 하며 독자들도 문제제기를 할 때 공정위가 개입하는 게 수순”이라며 “공정위가 바로 옆에 서 있다가 통제 호루라기를 불면 취지와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규개위 민간위원과 공정위 견해 비교
구분규개위 민간위원 견해공정위 방침
신문고시 적용 -자율규제가 우선
-고시는 자율규제를 지원하기 위한 보완장치
-자율규제는 고시를 기준으로
-타율규제를 강요하는 수단
공정위 개입 시기-자율기관인 신문협회가 주최
-공정위 개입은 절제
-시장혼란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가능
-신문고시 제정부터 개입
-신문협회 요청뿐만 아니라 자체판단에 따라 수시 개입 가능
자율규제 포함 내용-신문고시 전반적 내용 포괄-지국과의 관계 등은 신문고시 우선 적용
고시 시행 주체-신문협회가 주도
-공정위 간여는 최소화
-공정위가 주관
-신문협회는 하부 집행조직
독자 콜센터 운용-신문협회가 자율운용-공정위 지방사무소와 신문협회에 동시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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