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시 문제점]정부 입맛대로 언론에 '칼날'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34분


규제개혁위원회가 13일 승인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告示)는 규개위 위원들이 일부 손질했는데도 독소조항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규개위는 신문업계 스스로 규약을 만들어 신문고시를 지키도록 했다면서 애써 ‘자율 존중’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문업계에서는 ‘겉으로는 자율, 뒷전에선 규제 칼날’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시를 만들어놓고 “정부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업계 자율로 실천하도록 한 것”이란 교묘한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 신문고시는 단순히 신문사 경영에 간여하겠다는 차원을 넘어 직간접적으로 언론을 통제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의혹 때문에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결국 규개위는 2년6개월 전에 이미 없앤 고시를 부활시켰다. “규제를 없애겠다”는 규개위가 없앴던 규제를 되살렸으니 설립취지에 두고 두고 흠집을 남긴 셈이다.

▽자율 앞세운 강요행위〓규개위가 어정쩡한 타협안을 도출한 것은 신문고시에 대한 제정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문사 자율규약 우선원칙을 앞세웠지만 이 규약은 공정위가 만든 신문고시 틀 안에서 만들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가 집요하리만큼 신문고시 부활에 집착한 것은 시장개선보다는 공권력으로 신문사를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는 게 관련 신문사들의 지적이다. 즉 시장점유율이 높은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사의 비판적 기사 흐름을 막아보자는 불순한 뜻이 숨어 있다는 것.

신문고시가 공정위 자체 판단으로 추진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97년에 만들어 99년에 없앤 1차 고시는 무가지 비중과 경품 한도만을 규정했으나 이번에 만든 고시는 판매뿐만 아니라 광고, 본사와 지국간 관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행위 등 광범위하게 규제망을 만들어 놓았다. 언론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도 “신문업계의 자율시정 노력이 정착돼 가고 있다”고 의견을 내놓은 것은 공정위가 신문사 경영에 개입해야 할 만큼 사정이 급박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규개위 기능도 논란〓규개위 역할에 대해 상당부분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규제를 없애는 기능을 가진 규개위가 이미 2년반 전에 없앴던 고시 조항을 더 강화된 내용의 규제로 키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홍창(金泓昌) 제일선물 대표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규제완화 추세로 바뀌는데다 신문업계의 건전한 자율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없어진 신문고시를 다시 만드는 것은 개악(改惡)적인 처사”라며 “규제를 없애나가야 할 규개위가 앞장서서 공정위 손을 들어준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상당수 민간 규개위원들은 독소조항을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듯한 공정위 관계자들의 집요한 공세를 막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고시 문제점
구분신문고시 내용문제점
적용 원칙-신문협회 자율규제 우선
-미흡할 때 공정위 고시적용
-자율 위장한 타율 강요
-고시 앞세워 신문시장 통제
자율규제 운용-자율규제기구에 일임
-합의 안 되거나 모호한 부분은 공정위가 직접 간여
-자율규제기구는 공정위 하부기구 전락
-공정위는 신문고시 총감독 역할
무가지(無價紙)와 경품한도-무가지와 경품 합쳐 유가부수의 20%까지 -없앤 규제를 다시 부활시켜 규제완화 원칙 훼손
-신문사 경영활동에 정부가 억지 간섭
본사와 지국의 관계 설정-본사가 지국에 목표량 설정 및 신문 공급부수, 신문단가 판매지역 등에 대한 결정 금지
-신문공급과 관련 지국차별 금지
-부당하게 지국에 대한 신문공급 중단 제한 또는 계약해지 금지
-본사와 지국의 자율계약 내용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행정권력의 월권
-지국 조직력이 강한 동아 조선 중앙 3사의 판매 영향력 축소 의도
-자유경쟁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발상
공동판매 허용-본사가 지국에 경쟁 신문을 못 팔도록 막는 배타조건부 거래행위 금지 -배달사고 방지와 효율적 지국관리에 애로, 독자불편 가중 우려
-‘빅3 신문’ 점유율 끌어내리려는 유도 조치
신문광고 규제-부당 고객유인 및 거래강제를 불공정 행위로 금지 -광고주는 ABC(신문부수공사)제도 도입 희망
-부실경영 신문사의 광고주 압박 해결이 우선돼야
-부실 신문사의 시장퇴출 시급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독과점지위 신문사의 판매가격 광고료 지국공급가 제한-동아 등 3사의 시장점유율 낮추기 위한 발상에서 비롯
-공정위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고무줄 잣대 남용 우려
고시 시행시기7월1일 강행시장실태 파악 및 여론 수렴 후 부활 여부 판단 바람직

▽공정위 ‘입맛대로’ 간여 가능〓공정위는 신문고시에 앞서 신문협회가 고시 내용을 담은 자율규약을 만들어 지키겠다고 약속할 경우 고시 적용보다 우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문업계 단체인 신문협회가 회원사의 판매와 광고 활동을 막는 자율규제를 만들어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또 회원사들의 이해(利害)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의된 자율규약을 이끌어내기가 불가능하다. 공정위는 신문협회에 가이드라인을 주고 여기에 못미칠 경우 직접 나서서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신문협회를 공정위 산하 실무국쯤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1차 고시 때도 공정위는 업무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어 협회에 실무를 맡겨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번에는 규제조항이 워낙 많아 기술적인 부분은 협회에 맡기고 정책적인 판단이나 규제집행은 공정위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독소조항 넣고 자율규제 ‘딴전’〓판매 광고 등에서 행정적인 간여를 하게 된다. 신문사 경영활동에 정부가 직접 나서 통제한다는 것이다. 본사와 지국을 불평등한 관계로 보고 지국의 지위를 강화한 것은 시장논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공동판매의 길을 열어놓아 ‘빅3’의 판매망을 교란시켜 시장점유율을 낮추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광고주협회에서도 반대한 광고부문 규제를 굳이 고시로 얽매겠다는 것도 지나친 관권 개입이라는 지적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신문고시 시행 어떻게…▼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告示) 적용에 앞서 자율규제를 존중하겠다고 한 의미는 1차 신문고시가 어떻게 운용됐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신문협회의 자율 우선’은 사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어쨌든 공정위는 7월1일자로 신문고시를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때부터 규제의 칼자루를 공정위가 쥐게 된다. 문제는 신문사들의 단체인 신문협회가 스스로 규제를 만드는 일에 합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진행상황을 지켜본 뒤 ‘일단 맡겨놓았더니 잘 안되더라’는 논리로 직접 신문시장에 간여할 가능성이 높다. 독약이 든 음식을 주고 먹지 않는 것을 “반찬투정을 하니 억지로라도 먹이겠다”고 밀어붙이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공정위는 신문협회를 신문고시를 집행하는 하부조직으로 부릴 의도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의혹은 공정위 실무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확연해진다.

공정위 관계자는 “1차 고시 때도 사실상 운용은 신문협회에 맡겼다”며 “공정위가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신문고시국’을 별도로 둬야 할 정도로 일이 많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또 공정거래법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부분까지도 세세하게 고시에서 얽어매려다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런 내용들을 부칙에 넣어 공정거래법 적용을 받도록 한다는 쪽으로 명문화시키기로 했다. 김병일(金炳日) 공정위 부위원장은 “신문협회의 자율시정 노력이 미흡하거나 신문협회에서 처리하기 힘든 사안은 공정위가 직접 나서서 신문고시에 따라 일을 처리하겠다”면서 또 “본사와 지국간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 등 자율규약에 담기 어려운 부분은 공정위가 처음부터 직접 처리하겠다”고 설명했다.

신문사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공정위가 곧바로 처리하지 않고 신문협회에 넘겨 자율시정을 권유하고 제대로 안되면 공정위가 직접 조사를 벌여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이 공정위에 일임돼 있어 공정위 잣대로 신문시장에 언제든지 간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형식적이거나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신문협회에 위임하는 대신 그 부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공정위가 나선다는 것. 이 경우 공정위는 ‘신문고시 총독부’ 역할을, 또 신문협회는 ‘공정위 파출소’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 신문협회도 회원사간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사안에 따라 뒷전에 앉아 신문사끼리의 반목(反目)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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