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포기' 왜 나왔나]"鄭씨 일가 지원 끌어내기 압박用"

  • 입력 2000년 11월 6일 0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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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처리와 관련해 연일 ‘법정관리’를 외쳐왔던 정부와 채권단이 돌연 경영권 박탈을 뜻하는 ‘감자 후 출자전환’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법정관리 경제부담 너무 커 ▼

▽출자전환 동의서 요구 배경〓정부와 채권단은 법정관리로 들어갔을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기존 경영진으로부터 현대건설을 떼내 은행 관리를 통해 현대건설 정상화를 모색해볼 수 있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능한 한 몰고 가지 않겠다는 얘기다.

채권단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출자전환이 가능하지만 이때는 부도 충격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출자전환을 통해 최악의 상황은 막아보자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건설이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우선 해외수주는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건설업계의 지적이다. 또 정부가 현대건설 부도에 따른 대책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하도급업체의 연쇄도산으로 인해 실업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에 미칠 직간접적인 악영향은 현재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 현대측 동의할지 미지수 ▼

▽실현 가능할까〓우선 현대그룹측은 “출자전환 동의서를 제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출자전환 동의서를 제출해 언제든지 경영권을 뺏길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대주주가 사재출자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룹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금융권 부채가 연말까지 유예된다면 한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의 의지도 불투명하다. 김경림(金璟林)외환은행장은 이날 은행장회의 결과에 따라 “7, 8일경 출자전환 동의서 제출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자연히 출자전환이 되는데 굳이 동의서를 요구할 것은 없다”고 밝혔다.

실제 11월3일 퇴출기업 발표 이전에도 이를 받아내려다 결국 받지 못해 발표내용에서 급하게 빼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결국 현대건설과 채권단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정부만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출자전환 동의서 제출’이 실현 가능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 출자전환해도 큰 기대 못해 ▼

▽정부의 진짜 속셈은〓정부의 진짜 속셈은 딴 곳에 있는 것 같다. 현대건설에 대한 정씨 형제와 그룹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출자전환 동의서 제출 요구’와 ‘법정관리행’이라는 두 가지 압박카드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채권단이 출자전환해 현대건설의 경영을 맡거나 자구계획을 맡아서 추진한다 하더라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정부와 채권단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현대 자구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현대 계열사의 지원과 정씨 일가의 도움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당초 ‘법정관리’라는 압박카드가 국민경제를 담보로 한 것으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출자전환 동의서라는 카드를 슬그머니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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