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기업퇴출]의미와 반응/시장 시큰둥

  • 입력 2000년 11월 3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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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大馬不死)란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해 상당한 성의는 표시했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완전히 없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 채점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도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 3일 발표된 부실대기업 퇴출에 대한 시장과 전문가의 반응은 이렇게 요약된다. 정부와 은행권이 또다시 기업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지만 좀더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빅5’의 제한적 정리로 불확실성 제거도 제한적〓98년과 비교해볼 때 이번에는 “할 만큼 했다”는 게 정부와 은행측의 주장. 당시에는 5대그룹 계열사 등 퇴출기업 수가 55개나 됐지만 일반인이 알 만한 곳이 거의 없었던 반면 이번엔 동아건설 등 굵직한 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 진영욱(陳永旭)한화증권 사장은 “현대건설을 (한시적) 법정관리에 넣는다는 원칙을 마련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없애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체 287개 부실판정 대상기업 중 ‘정리’대상으로 분류된 업체가 52개에 이르지만 실질적인 청산은 19개사에 그쳤다. 그것도 대부분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중이던 기업이다.

하선목 CSFB 애널리스트는 “현대건설이 살려면 부채를 1조5000억∼2조원을 확실히 줄여야 한다”며 “동아건설을 제외한 대기업을 대부분 회생시키기로 한 것은 부실기업정리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생사와 직접 얽혀있는 은행권에 퇴출기업 부실판정을 맡긴 것도 이번 구조조정의 약효를 떨어뜨린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동원경제연구소 온기선(溫基銑)이사는 “기업이 죽으면 자신들도 위험해지는 판에 은행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심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좀 더 시간을 갖고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 평가를 의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는 확인〓98년 ‘6·18 퇴출’ 당시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은 첫 단추를 끼운 데 불과하다”며 부실기업 퇴출이 상시 이뤄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은행이 ‘돈 받을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적극 행사하고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109조원이나 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에도 기업구조조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50조원의 2차 공적자금이 더 투입돼야 했다. 정부가 2년4개월여 만에 다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은행에 맡겨뒀다가는 경제의 실물부문이 금융의 발목을 잡고 다시 금융이 실물성장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

정부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동아건설을 퇴출시키고 현대건설에 대해서도 (시한부)법정관리를 발표했다. 충분하지 않지만 구조조정 의지는 어느 정도 보여준 셈이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부실기업 퇴출의 충격은 관련 하청업체들의 연쇄도산으로 나타날 우려가 높다. 실업문제도 심각할 것이다. 은행도 이번 구조조정으로 새 부실여신이 1조9626억원 늘어났다. 그만큼 대손충당금 부담이 커진다.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구조조정 지원단을 발족해 피해를 보는 중소 협력업체에 대해 신용보증기관을 통해 특례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한국은행도 구조조정 대상기업이 발행한 상업어음을 금융기관이 할인해 줄 경우 그 할인액의 절반에 대해 연리 3%의 총액한도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LG경제연구원의 한 임원은 “퇴출기업 선정은 수술날짜를 받아놓은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 수술을 받으면(퇴출이 이뤄지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흉내만 낸 98년 6·18퇴출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실물경제에 미칠 충격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찬선·정경준기자> hcs@donga.com

법정관리·청산 29개 기업 명단(단위:억원)
기업명주거래은행현재상태총신용공여처리 방안
광은파이낸스광주-847청산
기아인터트레이드신한-704
대한통운서울-5,227법정관리
동보건설주택-1,822법정관리
삼성상용차산업-7,315
양영제지산업-545
영남일보대구-828법정관리
한라자원외환-617청산
해우조흥-1,361
대동주택주택법정관리780청산(폐지신청)
대한중석국민665
동양철관산업1,246법정관리(신규지원중단)
미주실업국민683청산(폐지신청)
삼성자동차한빛35,043
세계물산외환4,395법정관리(신규지원중단)
신화건설산업2,338청산(폐지신청)
우방서울7,775법정관리(신규지원중단)
우성건설신한3,657청산(폐지신청)
일성건설서울853
청구대구1,962법정관리(신규지원중단)
태화쇼핑부산575
해태상사국민957
동아건설산업서울워크아웃28,355법정관리
서한대구1,308
피어리스한빛649청산
삼익건설한빛화의2,028
서광국민693
진로종합식품농협653
진로종합유통서울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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