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돈세탁 처벌법 추진…정치자금 제외 논란일듯

  • 입력 2000년 8월 18일 17시 03분


은행 등 금융기관 직원들이 고객의 입출금 및 해외송금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조직범죄 탈세 뇌물수수 횡령 등 범죄 혐의를 알게 되면 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불법 조성된 자금의 '돈 세탁'과 해외유출을 막기 위해 자금세탁처벌법과 금융거래보고법(가칭)을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또 검은 돈의 흐름을 감시하기 위해 국세청 검찰 등의 인력을 지원받아 재정경제부 산하에 금융거래정보기구(FIU)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8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재경부의 용역을 받아 마련한 이같은 내용의 '금융거래정보시스템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검은 돈의 유통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내년부터 외환거래가 전면 자유화되면 한국이 국제적인 자금세탁 중개지로 이용돼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위험이 크다"고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발을 우려해 정치자금은 단속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인데다 일부 내용이 금융실명제상의 고객비밀 보호조항과 상치돼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운영되나〓새 제도의 골격은 △금융거래 관련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기구의 신설 △범죄혐의 거래에 대한 금융기관 신고 의무화 △자금세탁처벌법의 재도입 등 세가지.

새 법이 통과되면 금융기관 직원은 범죄혐의가 의심되는 원화 및 외환거래 내역을 FIU에 반드시 신고해야 하며 신고사실을 고객에게 알려서는 안된다.

재경부는 혐의거래 유형으로 △가명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경우 △단기간에 거액의 입출금이 빈번하게 반복된 뒤 계좌가 해지된 경우 △거액을 여럿으로 쪼개 입출금하는 경우 △고객이 신고를 하지 않도록 강요하거나 매수하는 경우 등을 꼽았다.

FIU는 일선 금융기관의 신고와 국세청 등이 보유한 정보를 활용해 불법 조성된 자금이 제도금융권을 통해 정상적인 돈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감시하게 된다. 수사권은 없으며 자금세탁이나 불법 해외도피 등의 혐의가 포착되면 검찰 경찰 국세청 등에 관련자료를 제공한다.

자금세탁처벌법은 97년 한보비자금 사건이 터진 뒤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다가 15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된 자금세탁방지법을 손질해 다시 추진하는 것. 범죄와 관련된 자금을 세탁하다가 적발되면 전액 몰수하고 처벌하게 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신종 금융기법들이 등장한 점을 감안해 처벌대상 범죄가 당시 6종에서 30여종으로 늘어나지만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추진배경 및 논란 소지〓KIEP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뤄지는 자금세탁 규모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1∼33%인 48조∼147조원, 자금의 불법유출은 GDP의 5∼10%인 25조∼50조원으로 추정된다. 내년 1월부터 2단계 외환자유화가 실시되면 범죄와 관련된 검은 돈의 유통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돈세탁을 감시하기 위한 금융거래정보시스템을 가동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게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혐의가 있을 경우 신고 의무화는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금융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노출시켜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클 뿐 아니라 금융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당국에 신고한 사실조차도 본인에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위헌 소지마저 있어 국회의 법안심사 과정에서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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