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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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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신만만하게 살아왔던 전 위원장이 요즈음 다소 위축되어 있는 듯하다. 측근들에 따르면 현대 계열 분리문제가 풀리지 않아 고민 중이라는 전언. 현대는 2000년 6월말까지 계열을 분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자동차를 떼어내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9%를 상회하는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현대는 아직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자동차에서 현대그룹을 떼어내는 기발한 역분리 방안을 내놓았으나 전 위원장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그는 지금 한 사람을 몹시 기다리고 있다. 바로 현대 계열분리의 키를 쥐고 있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다. 정 회장은 지난달 말 훌쩍 외국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총수치곤 드물게 혼자 다니는 그의 행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룹 내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비서실에 물어봐도 “우리도 잘 모른다”고만 말할 뿐이다.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에 머물고 있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답답하기는 정 회장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앞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계열분리를 단행하지 않으면 상당한 타격을 입게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 회장의 지분을 팔자니 정몽구(鄭夢九) 회장이 부담스럽다. 자동차가 고스란히 정몽구 회장의 수중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 측근은 “정 회장은 해외에 체류하면서도 계열분리 해법에 골몰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도 귀국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답답해진 전 위원장은 그의 주변 인물들과 접촉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정 회장의 동생인 정몽준(鄭夢準)의원을 만나 아버지와 형님을 잘 설득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 회장에게 귀국 즉시 만나자는 연락도 해 뒀다.
전 위원장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로선 이 문제가 재벌개혁의 한 상징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97년 3월 공정위 수장에 취임한 이래 3년반. 특히 재벌개혁이 숨가쁘게 전개됐던 지난 2년여간 공정위는 그 선봉에 섰다. 전위원장은 재벌로부터 공적(公敵)으로 불리면서도 ‘공정대사’로서의 숙원이었던 재벌개혁을 진두지휘했다.
170㎝가 안 되는 작은 체구. 그러나 재벌개혁 논리를 주장할 때면 매서운 눈초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 위원장은 “이 문제를 재벌개혁의 한 작품으로 마무리짓고 싶다”며 강한 집념을 내비치고 있다.
몽헌 회장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후계구도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왕회장 지분 중 3%만 의결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의결 우선주로 돌리자는 수정제안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전윤철 vs 정몽헌. 두 사람의 만남은 이제 불가피하게 됐다. 그 회동 결과에 따라 현대 계열분리는 순풍을 탈 것인지, 정면 충돌로 갈 것인지 판가름 날 것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