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硏 111억공사 '간 큰 입찰'…과기부 보류지시 묵살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3분


한국원자력연구소(소장 장인순·張仁順)가 경수로 안전장치 건설을 발주하면서 이 사업의 적격성여부와 기술심사의 문제를 제기하며 입찰을 보류하라는 과학기술부의 지시를 묵살하고 민간업체에 단독으로 공사를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연구소측은 이 과정에서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자 책임자를 보직해임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일 과학기술부와 원자력연구소에 따르면 연구소가 지난달 9일 실시한 원전 안전시험장치인 건설 입찰에서 현대건설이 예정가(120억원)의 92.5%인 111억원에 단독으로 공사를 따냈다.

이 사업은 연구소내 열수력 안전연구팀(팀장 정문기·鄭文基박사)이 원전과 유사한 시설을 지어 안전성을 시험하는 장치로 92년부터 추진해온 대형 프로젝트.

그러나 과기부는 입찰과정에서 원자로 건설부문에 우수성이 입증된 한국중공업이 배제되는 등 기술심사 과정에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연구소측에 ‘시급한 사업이 아니니 전문가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입찰을 보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5월초에 보냈다.

과기부 관계자는 “연구개발심의위 원자력안전분과 위원들이 국내 상황에 가장 적합한 용도와 규모를 결정하지 못했으므로 확정때까지 직접비 집행을 보류하라고 두번 지시했다”면서 “인건비만 지출하도록 하고 전체적인 계획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따른 뒤 확정하겠다는 게 과기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소측은 공문을 접수하고도 장소장 등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입찰을 강행해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현대건설에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는 것.

특히 입찰 담당부서가 입찰 당일 30분전에 장소장에게 이 계획을 보고했고 장소장의 유보 지시에도 불구하고 입찰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과기부가 진상조사에 나서고 감사원이 감사에 들어가자 열수력 안전연구팀은 뒤늦게 이 공문을 장소장에게 보고했고 장소장은 책임을 물어 지난달 하순 정팀장과 실무부서 관계자 등 3명을 보직해임했다.

정팀장은 “과기부의 공문내용은 입찰을 보류하라는 지시라기보다는 전문가회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며 “5월 이 프로젝트와 관련한 전문가회의에서 사업의 필요성을 주장한 뒤 계획대로 일을 추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장소장은 “실무팀에서 과기부의 공문을 묵살한 경위가 납득되지 않는다”며 “프로젝트를 빨리 완수하려는 의도였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소측은 말썽이 나자 뒤늦게 현대건설측에 입찰무효를 일방적으로 통보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압 경수로 열유동 종합 시험장치▼

한국형 경수로 등 원자로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장치. 한국형 경수로를 외국에 수출하려면 관련 시험자료가 있어야 구매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 경수로의 운영시험결과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인위적 조건에서 시험 데이터를 얻으려면 이같은 장치가 필수적이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