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빅뱅(上)]거대은행만 살아남는다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03분


《은행합병이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 금융빅뱅의 서막이 올랐다. 그동안 ‘우물안개구리 식’의 금융산업에 안주했던 국내 금융기관들도 세계적인 조류를 거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형 합병이라는 첫 시험무대인 만큼 곳곳에 함정이 숨어있다. 국내 금융산업의 재편과 이에 따른 문제점 및 과제를 시리즈로 3회 엮어본다. <편집자>》

우리나라에도 ‘메가뱅크(Mega Bank)’의 시대가 열릴까.

정부가 물밑에서 떠돌던 합병 논의를 수면위로 끌어올림에 따라 98년에 이어 은행권은 또 다시 거대한 합병의 급류에 휘말리게 됐다.

이번 합병은 98년에 소규모 부실은행을 우량은행이 인수했던 것과 달리 대형 시중은행들의 합병이라는 점에서 은행권, 더 나아가 제 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의 지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가 ‘금융 지주회사’라는 새로운 카드로 일부 은행의 합병을 진두지휘함에 따라 합병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재편되는 은행권〓“은행들이여 제발 세상 밖을 보라.” 3월 금융시스템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일본마저 아사히, 도카이, 산와은행이 공동 지주회사방식을 선언하면서 4개의 대형금융그룹으로 재편되자 정부가 국내 은행에 던진 경고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리딩뱅크의 육성이라는 이유로 합병을 강력히 유도해왔으며 그 이면에는 합병을 통해 은행의 거대 부실을 해소, 추후 공적자금 투입규모를 줄여보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었던 것이 사실.

정부의 의도대로 일단 한빛 조흥 외환은행 등 공적자금 투입은행이 금융지주회사 아래로 묶일 경우 3월말 기준으로 총자산 195조원(한빛 82조, 조흥 58조, 외환 55조)의 초대형 은행으로 거듭나면서 세계 100대 은행에 가볍게 진입하게 된다.

또 지방은행도 금융지주회사 형태로 묶이면서 대형화될 경우 현재 합병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왔던 우량은행들도 합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미국계 컨설팅업체인 AT커니의 박의헌(朴義憲)부장은 “대형은행이 등장해 리테일뱅킹을 강화할 경우 현재 국민 주택은행 등의 우량은행도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기업금융에 강점을 가진 은행과 합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우량은행 중 상당한 부실여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은행들도 이번에 합병을 통해 자본을 늘리고 정부의 증자참여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부실여신을 떨어낼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합병우선주의’에 대한 일부 시중은행의 반발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독자생존을 선언한 신한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검증하지도 않고 일단 살아남기에 급급해 합병을 추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자율합병’이라는 말 속에는 합병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포함된 것이며 무조건적인 합병 분위기를 유도하는 정부의 행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카드 ‘금융지주회사’〓향후 은행간 합병에서 새로 도입될 금융지주회사는 합병시 인력조정 등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인 합병을 이룰 수 있는 카드로 일찌감치 정부와 금융권에서 거론됐던 것. 즉 일단 금융지주회사 아래 은행들을 자회사 형태로 묶어놓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은행별로 유사한 부문을 통합해 기업금융 전문 은행과 소매금융 전문은행으로 ‘헤쳐 모여’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각각 거느리고 있는 카드 리스 투신 증권 등의 자회사를 통합해 성격에 맞는 은행 아래 재편된다.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경우 이 과정에서 배드뱅크를 지주회사 아래 별도로 신설해 모든 부실자산을 이곳으로 넘김으로써 처리가 훨씬 수월해진다. 해외투자자본과 국내 산업자본을 훨씬 끌어들이기 쉬운 점도 장점.

그러나 이같은 금융지주회사 방식이 합병의 시간끌기 방편일 경우 화학적 시너지효과가 나타나기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

금융연구원 김우진(金愚珍)연구위원은 “실제 통합효과가 나타나도록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 정부가 시중 우량은행의 합병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되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간접적인 지원에 그쳐야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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