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中企 『이젠 디자인이다』…기술력만으론 한계

  • 입력 1999년 1월 31일 20시 25분


94년 자본금 7천만원으로 유아용 용변기 제조업에 뛰어든 펜타존의 채인기사장. 사업시작후 3년이 넘도록 투자비회수는 커녕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만 늘어났다. 채사장은 “무작정 일본 업체의 제품 디자인을 흉내낸 것이 결정적인 실착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한다.

채사장에게 서광이 비친 것은 97년. 국내 전문 디자인업체에 독자적인 상품디자인을 의뢰해 그해 4월 시제품 ‘멜로디 변기’가 나왔다. 우선 그동안 외면했던 해외 바이어들이 ‘베스트 디자인’이라며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펜타존은 본격 생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국 독일 프랑스 등 13개국으로부터 1천5백만달러어치 물량을 수주했다. 올해는 세계 최대 할인점인 월마트에도 납품할 예정.

채사장은 “디자인 하나가 회사의 운명을 바꿀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한다. 기존 제품들은 3세까지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분리형 받침대를 장착, 6세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멜로디 기능을 첨가한 것이 적중했던 것. 펜타존뿐만 아니다. ‘과연 이게 중소기업 제품일까’할만큼 참신한 디자인으로 수출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중소, 벤처기업들이 늘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에다 디자인을 가미한 3박자 경쟁력으로 세계의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는 것.

이레전자가 올해 1백여억원어치 수출계약을 맺은 회의용 전화기 ‘컨퍼런스폰’도 디자인 덕을 톡톡히 본 제품. 네모 일색인 기존 전화기 모양을 과감히 탈피해 세모형을 선택한 것이 바이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제패의 ‘실리콘 건강칫솔’과 알토텍의 ‘까메오 전화기’는 수출대상국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한 디자인으로 성공을 거뒀다.

‘실리콘 건강칫솔’은 초창기만해도 타원형으로 만들었다가 날씬한 제품을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외면해 쓴맛을 봤다. 몇번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슬림형에 승부를 걸게 된 것.

알토텍은 동물 그림을 새겨넣은 까메오 전화기를 만들면서 특정 동물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동물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던 것. 바이어가 원하는 동물 그림을 새겨넣을 수 있도록 디자인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김완문본부장은 “기업들의 기술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제는 경쟁에서 이기고 고수익을 올리려면 고부가가치산업인 디자인이 승부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YTC텔레콤의 ‘사오정 전화기’ 옴니시스템의 ‘원격검침용 전자식 전력량계’ 에이컴의 ‘초정밀 미량저울’ 에이스전자의 ‘무선진공 청소기’둥 지난해 디자인진흥원이 선정한 히트 디자인 상품 ‘베스트10’의 경우 디자인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28억2천만원. 이들 기업들이 현재까지 올린 매출은 개발비의 8배가량인 2백24억7천만원에 이른다. 디자인의 고부가가치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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