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계 정책간담회]전경련서 빅딜 중개역할

  • 입력 1998년 7월 27일 19시 21분


정부 경제팀과 재계를 대표하는 5대그룹 총수들. 한국경제의 실질적인 ‘조타수’를 맡은 이들의 7시간이 넘는 마라톤회담.

26일 재계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합의가 지금까지 5,6차례나 있었던 합의와 다른 점은 이같은 논의의 ‘파격’과 자유분방한 토론방식이다.

이번 회동은 정재계 회동을 희망해온 전경련측 요청을 정부측이 수용하면서 표류위기를 맞은 노사정위원회의 한 축인 사용자를 달래고 그 배경엔 또 정재계의 합의를 토대로 노동계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점에서 난상토론을 거쳐 빅딜과 정리해고 자제 등 민감한 주제에 합의한 것은 큰 성과로 평가되지만 정부와 대기업간 어쩔 수 없는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후문.입장이 다른 기업들이 실제 행동을 통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딜러’를 만난 빅딜〓전경련은 우선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빅딜의 ‘매파’를 담당할 대외적 명분을 얻었다. 수조원의 자산이 오가는 빅딜이 성사되기 위해선 동가(同價)를 보장할 정부 및 금융권의 측면지원이필수적.전경련은그러나 재계의반목이두려워그동안매파역을맡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사업양수도에 따른 양도세를 감면해주는등 세제지원책은 물론 대출금 출자전환이나 빅딜 대상기업의 지급보증문제 등을 포함한금융지원책까지마련하겠다는입장.

회담에서는 빅딜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토론참가 인사는 “삼각빅딜의 당사자인 구본무(具本茂)LG회장의 반도체 3사 통합 무용론(無用論)이 인상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한 재계인사는 “장시간 회담을 통해 총수들이 ‘빅딜이 정말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실히 갖게 된 것 같다”고 평가. 실제로 이건희(李健熙)삼성회장은 회담도중 기자들을 만나 “빅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시인, 그동안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회담이 끝난 뒤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과 따로 남아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정리해고 자제〓재계와 정부의 자제합의는 구속력이 거의 없다. 합의문에서 정부는 ‘합법적인’이란 문구에, 재계는 ‘기업사정에 따라 임금조정이 가능할 경우’라는 전제에 의미를 뒀다. 실제로 이번 합의에도 현대자동차는 정리해고 강행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고 나머지 기업들도 정리해고 자제합의를 따를지 의문이다. 다만 정부는 고용보험법 시행령이 규정하고 있는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 5대재벌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

정부는 이날 회담에서 사실 정리해고 문제보다 미취업 대졸자의 취업에 더 큰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수들은 “몇달이라도 채용을 하면 취업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여 합의문에만 ‘최대한 노력한다’는 선까지 양보했다.

▼상호지급보증 해소〓5대재벌을 포함한 30대재벌은 2000년 3월까지 상호지급보증을 완전 해소해야 한다. 정부와 재계는 이같은 상호지보를 마감시한에 임박해 일시에 해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중간시점인 99년 3월말까지의 감축목표를 8월말까지 주거래은행에 제출할 재무구조개선약정에 포함시키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같은 상호지급보증 해소문제는 5대재벌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월1일 현재 5대재벌의 자기자본대비 상호지보비율은 △현대 41.2% △삼성 14.0% △LG 15.5% △대우 47.8% △SK 15.1%(공정위 자료). 5대재벌의 경우 계열사 발행 회사채 보증이나 신규여신 채무보증으로 늘어난 상호지보를 감안하더라도 50%가 넘는 경우는 없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부채비율 감소〓가장 논란이 거셌던 부분. 정부측이 ‘99년말까지 부채비율 200% 달성을 위해 중간목표를 세워달라’고 주문하자 총수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현금흐름이 수반되지 않는 자본증가는 인정할 수 없다”며 자산재평가 차익의 자본산입 불가원칙을 고수. 4월15일 현재 5대 재벌의 평균 부채비율은 479.1%로 200%이내로 줄이려면 1백28조원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다.

〈박래정·신치영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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