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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7월 22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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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김병주 서강대경제학과 교수,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이소장〓김우중 전경련회장대행의 정리해고 자제발언과 정세영 현대자동차명예회장의 반대발언으로 대기업의 인원구조조정에 혼선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당시 현장에 계셨던 김교수님이 말씀을 시작하시지요.
▼김교수〓김회장과 정회장의 발언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같지만 사실 똑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실업률 7.9%는 이미 우리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하한선에 도달한 수준입니다. 이 수준을 초과하면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정치권의 고민을 김회장이 대변해준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정회장은 현 시점에서 필요한 구조조정은 인원을 줄이는 것이라는 원론적 견지에서 발언했습니다. 같은 대기업이라도 경험이 다르고 업종별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입장에 반영됐을 것입니다.
▼이소장〓김회장의 발언은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자르지 말고 임금삭감이나 가동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버텨보자’는 대우그룹 내부의 결론을 기업 전체로 확대해보자는 뜻입니다. 대규모 실업으로 내수시장이 붕괴하면 기업도 무너지고 산업이 붕괴합니다. 임금삭감이나 해외 돌파구를 먼저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단 노동계의 적절한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요.
▼김교수〓그러나 현 시점에서 이같은 발언은 노동계와 중소기업에 혼선을 줘 구조조정을 늦출 수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입니다. 공기업과 대기업은 높은 임금수준을 지탱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납품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이때문에 중소기업은 다시 임금을 끌어내려야 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습니다. 때문에 대기업이 현재의 인원을 모두 안고가면 누군가가 고통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공기업의 경우 엄청난 개혁이 필요한데 김회장의 발언을 잘못 해석하면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소장〓혼선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리해고 자제는 일종의 방향제시로 선택이지 강요가 아닙니다. 이 방식이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노동계의 역할분담이 전제된다면 경영자가 전략을 바꿔 해외로 더 적극 진출하고 자본생산성과 사무직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을 높여보자는 것입니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해고보다는 임금을 줄이는 것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김교수〓김회장은 5백억달러 흑자를 내면 비교적 단기간에 위기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회장은 좀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회장은 일단 정리해고를 하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극복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고 생각하는 정회장은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더 느끼는 것이지요. 또 하나 노조가 임금삭감을 과연 받아들일지 의문이 남습니다. 도저히 노조를 설득할 수 없다면 김회장 발언의 전제가 깨집니다.
▼이소장〓노동계가 임금삭감 등 대타협을 거부하면 충돌만이 남습니다. 김회장의 발언은 노동계의 대승적 자세를 촉구하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김교수〓우리나라 노조지도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직장이 없는 아웃사이더까지 고려해서 투쟁방향을 결정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합니다. 정회장은 우리나라 노조의 이같은 특이성을 감안하고 있습니다. 반면 김회장은 노조도 나라를 생각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소장〓국가이익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불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노조도 잘 알고 있겠지요. 자동차업계의 가동률이 50%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은 사람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줄이는 대신 임금을 절반으로 낮추면 같은 효과를 냅니다. 임금을 낮추고 가동률을 올리면 생산비용이 절감되지요.
▼김교수〓노사정 중 정(政)도 문제입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경제론은 노동자 농민을 보호하는 철학으로 심하게 말하면 인기영합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때문에 노사정 협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요. 대통령은 자신의 기본철학이 시장경제로 바뀌었다는 점을 천명해야 합니다.
▼이소장〓기업은 정부를 믿고 경제위기 탈출구를 찾으려 하는데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하면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김교수〓우리경제를 만드는 데 노동자들의 힘이 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기업가의 역할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일부 기업가의 탈법이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요. 이것도 사실은 정치권과의 연결고리 때문이고요. 또 하나는 관료의 역할입니다. 시장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관치경제가 부분적으로 강화된 느낌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수용하는 구조조정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4,5년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소장〓기업구조조정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사업을 정리하는 방법과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탈출구를 찾는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는 외국자본 외국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기업이 사업을 떨어내는 방법도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이 정말 시급하다면 기업들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부서비스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후진국의 제도를 갖고 기업들만 잘하라고 하면 안되지요.
▼김교수〓정부는 급하니까 IMF 처방을 따르고 있지만 IMF가 우리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국내시장경쟁이 원활해지도록 하자는 것이지 독과점적 지위를 외국기업에 넘겨주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소장〓구조조정도 잘해야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잘하기가 쉽지 않지요. 기업 정부 금융 노동계 등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대기업은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노조도 임금삭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운동 등에 적극 협력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기업이 망하기 전에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리〓김상영·이영이기자〉you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