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韓銀,「통화공급 확대 경기부양」뜨거운 논란

  • 입력 1998년 7월 13일 19시 18분


탈진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 돈을 더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통화공급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논의가 뜨겁다. 정부 일각과 재계에서는 “당장 돈을 풀어 침체된 내수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통화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정책수단으로 쓰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논란 배경

‘산업기반 붕괴’ 우려가 나올만큼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해결방안의 하나로 통화공급 확대론이 부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요구한 것은 통화긴축과 고금리정책. 고금리정책을 통해 한계기업을 걸러내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급격한 내수위축과 기업연쇄부도, 고용사정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급기야 산업기반의 붕괴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가치하락이 겹치면서 장기침체의 가능성마저 대두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1∼6월 중 구조조정이 다소 더디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오일쇼크이후 가장 낮은 마이너스 4.8%의 성장을 기록할 전망. 환은경제연구소는 “하반기에도 내수침체가 이어져 상반기보다 더한 마이너스 5.8%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성장잠재력의 약화를 막기 위해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며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는 초강수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가열되는 경기부양 논쟁

▼돈을 풀자는 주장〓재정경제부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잇는 산업기반의 붕괴를 막기위해서는 통화공급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이달들어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정부는 본원통화 여유분인 5조원을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환매조건부채권(RP)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통화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

내수침체가 워낙 심각한 상황이어서 통화를 풀어도 물가에 미치는 부담이 적어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최근 환율하락(원화가치 평가절상)과 관련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통화를 늘려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연구위원은 “수출이 줄고 제조업 기반이 붕괴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원화의 고평가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통화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 달러화를 사는(돈을 시장에 푸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통화팽창 반대주장〓돈을 풀자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은은 13일 “통화공급확대는 구조조정을 그르치고 금리하락이나 신용경색 완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식보고서를 발표해 통화팽창 주장에 정면 반발했다.

정명창(鄭明昌)한은통화금융실장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기업은 자구노력없이도 기업의 채무부담이 경감되므로 계열사 매각 등 자구노력을 포기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고비용―저효율구조의 청산은 어렵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강대 조윤제(趙潤濟)교수는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해 “환율 움직임은 외환시장의 자율적인 메커니즘에 맡기는 게 옳다”며 “환율이 약간 내려갔다고 해서 시장에 개입해 돈을 풀면 물가안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 전망〓정책기조는 정부와 IMF간의 3·4분기(7∼9월) 정책협의를 거쳐 29일 최종 결정된다. 그런데 IMF측이 종래의 긴축정책을 거듭 강조하면서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따라서 통화확대 주장이 정책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강운·송평인기자〉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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