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본 97한국경제]겨우 넘긴 국가부도

  • 입력 1997년 12월 29일 20시 20분


외국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지난 8월 재정경제원 실무자 사이에서도 「멕시코사태와 같은 외환위기」가 본격 거론됐다. 10월 중순 재경원 금융실은 IMF구제금융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셸 캉드쉬IMF총재가 극비리에 방한, 강부총리와 임창열 당시 통산부장관을 만나 구제금융 신청 및 제공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청와대와 재경원이 IMF구제금융 신청을 공식발표한 이틀 뒤 IMF실무협의단이 서울로 날아왔다. 28일 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에게 전화로 경고했다. IMF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것. 12월3일 캉드쉬총재가 서울로 날아왔다. 그는 오전으로 예정된 서명식을 취소하고 한국에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추진을 하도록 압박했다. 이날 오후 7시40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회의실. 합의문이 조인됐고 캉드쉬는 한국이 IMF 돈을 빌리게 된 사실을 축하해줬다. 국민은 이날을 정축국치일로 간주했다. 이후 IMF자금 90억달러가 들어왔지만 환율 금리 주가 등 금융지표는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외지불유예(모라토리엄)우려가 높아만 갔다. 12월19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당선자는 IMF협약준수를 다짐했고 24일 밤 미국과 IMF는 1백억달러의 조기지원을 전격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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