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총재 금융개혁후퇴발언 안팎]내용모른채 합의「자인」

  • 입력 1997년 6월 18일 20시 07분


李經植(이경식) 한국은행총재가 정부의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기구 개편안에 대해 부서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18일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 줄 몰랐다』고 실토함으로써 국면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이총재는 현재 간부직원들에게서도 『그는 한은을 팔아먹은 인물로 남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들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다. 이총재는 지난 16일 과천 종합청사에서 열린 정부의 개편안 발표 기자회견장에 가지 말라는 직원들의 간청을 뿌리쳤고 회견중 『개편안대로 하면 한은은 더욱 독립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 변함없는 소신』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이총재가 뒤늦게 「정부의 개편안이 한은의 독립성을 해치는 독소조항들로 일관돼 있다면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보임으로써 그의 향후 거취와 정부 개편안의 향배가 주목된다. 이총재가 개편안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부족했다고 시인한 이상 그는 어떤 형태로든 행동으로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안에 합의해준 한은총재로서 한은직원들의 요구대로 개편안 반대에 앞장서기는 시기도 늦었고 현실적으로 무리다. 뒤늦게 말을 바꿔보았자 한은총재가 금융개혁의 핵심인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기구 개편에 대해 「내용을 충분히 모른 채」 합의했다는 비난만 듣게 될 형편이다. 이총재가 「입법과정에서 반대하면 된다」고 한은 임원들에게 밝힌 것은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재경위 법사위를 거치는 동안 한은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은 의도대로 뒤집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이총재는 최근 『외압이라면 모르되 내부에서 나가라면 곤혹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상황전개에 따라 그가 자진 사임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이총재의 사퇴국면까지 간다면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국회통과가 더욱 어려워지고 지난 95년의 경우처럼 유야무야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한은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윤희상·천광암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