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부도위기에 빠져 있다. 증권시장에 자금압박설이 돌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기존 대출금을 갚으라는 금융기관들의 독촉이 잇따른다. 기업은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끝내 부도의 늪에 빠져든다. 본보는 22일 11명의 경제 및 금융전문가들에게서 「혼란스런 자금시장과 부도 도미노 우려」에 대한 긴급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상황진단]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은 채산성과 현금흐름을 무시한 기업들의 무모한 차입경영과 부실징후기업에 돈을 물리지 않으려는 금융기관들의 경쟁적인 자금회수가 빚은 합작품」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현상황을 「금융기관과 기업관계 뿐 아니라 기업들 간에도 서로 믿지 못하는 신용공황상태」로 보는 전문가들(李定祚·이정조 21세기향영리스크컨설팅 대표 등 4명)이 있는가 하면 「신용공황으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다. 민감하고 불안한 상황이므로 조심스럽게 규정해야 한다」는 반응(曺夏鉉·조하현 연세대교수)도 있었다.
특히 『투자효율은 생각하지 않고 부동산에 과도하게 투자한 기업들이 부동산 값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현금흐름에 중대한 변고가 생긴 것이 근본 원인』(李彦五·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이사), 『2세 재벌이 주도한 부채비율 높은 기업들의 외형경쟁이 빚은 결과』(閔丙均·민병균 장은경제연구소장)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반면 『우리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해외여건이 악화되면서 나타나는 구조조정 현상이므로 부도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丁一宰·정일재 LG경영컨설팅센터 이사)는 견해도 있다.
[현상타개책]
▼기업이 할 일〓일을 벌여 놓으면 자금은 금융기관에서 무슨 수를 쓰든 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빨리 버리라는 충고가 특히 많았다. 삼성연구소의 이이사는 『막판에 몰려서야 부동산매각 등 자구책을 세우지 말고 미리 대비하라』고 말했다. 장은연구소의 민소장은 『소유권에 연연해하다간 다 놓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또 『제2금융권에서 루머만 듣고 자금회수에 나서는 것은 해당기업의 경영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므로 기업재무구조와 자금조달과정을 투명하게 만들라』(유재훈 조흥경제연구소장)는 권고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姜文秀(강문수)선임연구위원은 『과다한 외부차입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실히 느끼고 수익성 위주로 경영패턴을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절대로 정부 지원을 기대해서는 안되며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과 부서는 철수해야 한다. 스스로 거품을 뺄 기회로 알고 대처하라』(鄭鎭鎬·정진호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주문도 있었다.
▼금융기관이 할 일〓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이 기업분석능력을 기르고 엄격한 심사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살리려고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괜찮은 기업이라는 판단이 서면 다른 금융기관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하며 한꺼번에 자금을 회수하는 무리한 거래는 하지 말라』(21세기향영컨설팅 이대표), 『일시적인 자금압박에 처한 기업에는 채권행사를 일시 유예하는 「화의(和議)제도」를 과감히 도입하라』(삼성연구소 이이사), 『돈이 남아도는데도 안 빌려주는 은행은 곤란하다. 앞으로의 금융환경은 정부보다 은행이 주도한다는 자각으로 장래성 있는 기업은 과감히 지원하라』(鄭淳元·정순원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상무)는 등 「과감한 지원」 요구가 많았다. 한편 고려대 李弼商(이필상)교수는 『기업이 부도나면 직접 피해자는 금융기관들이므로 당장의 이익만 생각해서 여신을보수적으로운용해선안된다』고 지적했고 연세대 조교수는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신용정보를 공유해 함께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춰 거대기업에만 과도한여신이나가지않도록 하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金柱亨(김주형)이사는 『은행이 개혁돼야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으므로 개방과 개혁에 나서라』는 색다른 주문을 했다.
▼정부가 할 일〓다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부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장논리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지켜 대기업도 잘못하면 망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성업공사 등을 통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대폭 해소해야 한다』(장은연구소 민소장), 『통화정책을 통화량 위주에서 금리위주로 전환해야 한다』(현대연구원 정상무),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여신운용을 하도록 규제를 풀고 자율권을 줘야 한다』(한경련 정위원)는 의견도 제시됐다.
고려대 이교수는 『여태까지 관치금융을 해놓은 정부가 이제와서 보신주의로 돌아서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는 각 경제주체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이루고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이 적재적소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윤희상·이희성·박현진·이용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