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이경식 韓銀총재『금융개혁 세계화 디딤돌』

  • 입력 1997년 1월 10일 20시 24분


금융계는 연초부터 개혁의 큰 소용돌이에 빠졌다. 한편으로 우리경제는 작년 사상최대의 경상수지적자 등으로 경제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통화신용정책을 총괄해야 할 한국은행의 시각은 어떤 것일까. 李經植(이경식)한국은행총재를 만나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총재는 지난 57년 한국은행에 입행, 4년간 근무한 뒤 체신부차관 경제수석 대우자동차사장 부총리 등 관계와 재계에서 오랫동안 「외도」를 한뒤 95년8월 金明浩(김명호)총재가 한은지폐유출사건으로 물러나면서 친정의 총책임자로 복귀했다. 이총재는 금융통화운용위원회 의사록 공개 등 조용하면서 실질적인 방식으로 한은의 위상제고에 힘써왔다. 이총재는 인터뷰동안 특유의 다변(多辯)으로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도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금융개혁위원회를 대통령직속기구로 설치, 금융개혁을 실시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금융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청와대 주도의 금융개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리 금융산업은 지난 30여년간 보호와 규제속에 묶여 가장 낙후됐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우리 금융산업은 앞으로 4,5년간 유례없는 개방과 자율화의 흐름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 금융산업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경제를 묶는 족쇄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개혁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았어요. 따라서 이번 금개위는 금융산업을 빨리 개혁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개혁의 강도가 높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금융개혁은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규제투성인 산업을 규제로 개혁할순 없죠. 정부는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능력껏 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만 주력해야 합니다. 물론 은행들이 금융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무대」가 달라지면 「연극」할 생각이 생길 겁니다. 금융기관이 소극적이라고 해서 코를 꿰어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융산업의 자율적인 발전이랄까 금융개혁하는데 걸림돌은 뭐라고 보는지요.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봅니다. 각 분야에서 금융산업의 후진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금융산업 종사자 사이에서는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작년 정부가 금융산업구조 조정법을 제정할 당시에도 금융계쪽에서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얘기가 없었습니다. 지난 30년간 규제에 길들여져 있다보니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최근 금융계에도 의식이 바뀌고 개선방향을 구체화해 가는 사람이 늘어나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통화정책을 어떻게 끌고나갈 생각입니까. 『정치를 의식해서 통화신용정책을 이끌어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대선이 미치는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나갈 생각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돈을 푸는 것은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할 계획입니다』 ―미국에는 대통령과 연방준비이사회제도(FRB)의장간에 통화운용을 둘러싼 갈등이 종종 있습니다. 총재께서는 앞에서 밝힌 생각을 선언적으로 표명할 용의는 없는지요. 『(웃으면서) 곧 발표할 올해 통화운용방안의 내용이 선언이라고 보면 됩니다. 정치쪽에서는 경제활성화를 바라겠지만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통화가치안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통화가 늘어나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6개월내지 1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국민들은 통화증발 당시에는 그 부작용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겠지만 설득하고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재계를 중심으로 우리 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들이 많은데요. 『저도 그런 주장을 이해합니다. 우리 금리가 일본 대만에 비해 3,4배가 높기 때문에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금리를 낮추느냐지요. 재계 사람들을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금리를 화끈하게 내릴 수 없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끈하게」 금리를 내리는 방법은 돈을 푸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럴 경우 물가상승으로 6개월이나 1년뒤에는 오히려 명목금리가 올라갑니다. 결국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는 인플레 기대심리를 줄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또 자금수요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기업이 어렵다고 아우성쳐도 올해 사업계획을 보면 호황기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어요. 초과자금수요를 줄이고 금융기관의 혁신도 뒤따라 준다면 금리를 1년에 1%씩 떨어뜨려 21세기인 5년뒤에 우리금리를 국제수준인 6,7%대로 낮출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낮추려면 일시적으로 떨어질지 몰라도 5년 뒤에는 다시 올라가게 됩니다』 ―금리인하 기간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내릴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인플레 기대심리를 안정시키는 방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통화량안정과 공급의 애로요인 제거가 필요합니다. 이건 정부의 몫이지요. 다음은 금융산업의 효율성 제고입니다. 이 세가지가 꾸준히 이뤄지면 1년에 금리를 1% 낮추는 것은 그리 어렵다고 보지않습니다』 ―금리를 한꺼번에 낮추기 어렵다는 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해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까. 『현재 어느정도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봅니다. 작년 정부주도로 금리가 일시적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이때문에 금리를 한꺼번에 내릴 수 없다는데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경제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경제전망은 어떻습니까. 『대체로 6%대 성장기조는 유지될 것입니다. 물가는 작년 환율급상승 임금 및 공공요금인상 등의 영향으로 올해 상승압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통화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경우 물가상승률을 4.5%내외에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경상수지적자폭입니다. 올해에도 경상수지적자폭이 클 경우 국가신인도가 떨어져 3,4년뒤에 한국에 돈을 빌려주는데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국제수지방어가 최대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수지방어를 위한 방안은 어떤 것입니까. 『과거에는 수출드라이브정책으로 국제수지를 방어했습니다. 환율을 올리고 행정력을 동원해 수출을 늘렸지요. 그러나 이제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쓸 수 없게 됐고 환율도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가 조작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수지방어는 수입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봅니다. 즉 국내 수입 소비수요와 투자수요를 줄여야지요』 그는 우리경제가 고도성장단계에서 균형성장단계로 접어들면 이같은 수입수요는 줄 것으로 본다면서 무역외수지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행수지의 경우 무역외수지중 적자폭이 가장 큽니다. 또 원유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서는데다 원유수입도 연간 1백60억달러에 달하는 등 에너지과소비도 심각한 만큼 에너지소비합리화도 중요합니다. 여러정책들을 조화롭게 사용할 경우 올해 경상수지적자폭은 1백50억달러에서 막을수 있고 조금 느슨하게 운영하면 1백80억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적정성장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고도성장에 익숙했던 국민들로서는 침체로 받아들여지고 또 그만큼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국민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겠지요. 작년에 경기침체에 대한 국민체감이 심했던 것은 94, 95년 2년동안 경제가 적정수준이상으로 성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2년동안 경제를 적정성장으로 유도했다면 작년 침체의 골은 그리 깊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전 싱가포르 중앙은행사람을 만났더니 비슷한 얘기를 해요. 싱가포르가 2000년대에 스위스를 따라잡으려고 고도성장을 유지해 지난 95년 따라잡았습니다. 문제는 그뒤 인구는 안늘고 생산기술도 한계에 부닥쳐 10%대의 성장을 못하게된 상황인데도 국민들이 이를 이해 못한다는 거예요. 우리경제의 체질강화를 위해서는 적정성장이 불가피한 만큼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금융시장개방으로 외국자본, 특히 핫머니(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예상되면서 멕시코사태와 같은 위기가 일어날 것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핫머니가 몰려드는 채권시장에서는 정부가 아직 대폭 개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핫머니의 유출입에 따른 교란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대신 올해는 양질의 해외자본, 즉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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