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후지와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라고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는 동네 중심부엔 일본 최초의 불교 사원인 ‘아스카데라(飛鳥寺)’ 터가 있다. 596년 건립 당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기술자와 승려가 큰 영향을 미친 문화유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입장객 국적을 물은 뒤 나눠주는 언어별 안내문 가운데 한반도 도래인(渡來人)의 영향을 명시한 건 한국어 버전뿐이었다. 한국어 설명문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파견된 이들의 지도 및 협력으로 훌륭한 절이 완공됐고, 일본 불교문화 형성의 원점이자 아스카에 수도를 세우는 근원이 됐다”고 해설했다. 하지만 영어 설명문에선 “일본 최초의 본격적 사찰”이란 점만 강조돼 있고, 일본어로는 “대륙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 韓교류 흔적 뚜렷한 유적도 ‘모르쇠’
고분 벽화 전시관일본 정부는 현재 ‘아스카·후지와라 고도’를 “고대 중국·한반도와의 긴밀한 교류의 소산”인 점을 앞세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등재 대상엔 이는 7개 불교 사원과 5개 궁정 유적, 7개 고분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원래 취지와 달리 현장에선 한반도의 영향력에 관한 설명이 대거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 달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해당 문화유산의 최종 등재가 유력한 가운데 ‘역사 축소’ 문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측은 “아스카·후지와라 내 문화유산의 배치와 설계, 기술 등이 중국 및 한반도 사이에서 이뤄진 중요한 인간적 가치의 교류를 보여준다”며 “궁정 유적과 고분들은 중국·한반도와의 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위계 구조, 장례 관습이 변화한 과정을 드러낸다”고 등재 타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고구려와 당나라의 고분 양식에서 뚜렷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7세기 후반 ‘다카마쓰(高松) 고분’도 현장 설명은 미흡했다. 올해 새로 설치된 해설판에는 “석실 내 사신도(四神圖)와 천문도가 그려져 있는데, 일본에서 이러한 고분벽화는 단 2기뿐”이라는 희소가치만 강조됐다. 사신도, 색동옷 여인 등이 고구려 수산리 고분과 유사하다는 내용은 빠졌다. 근처에서 운영되는 벽화 전시관 출구 쪽에 일본어로 “중국이나 조선에도 비슷한 예가 있으며, 이 고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시아적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게 전부다.
이밖에 아스카 연못(飛鳥池) 유적과 야마다데라(山田寺) 터도 백제 건축 기법 등에 관한 설명은 일절 없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는 “특히 아스카 시대(588~694년)는 한반도 교류의 소산이 분명하며, 이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학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백제 계통 도래인이 크게 관여한 사실은 역사서 ‘일본서기’와 출토 유물에서도 두루 확인된다”고 했다. ● “중요한 역사 의도적 누락 안돼”
아스카데라 절일본의 이러한 상황은 세계유산의 가치를 해석하고 알리는 데 ‘윤리적 측면’이 중요해진 최근 흐름과는 크게 어긋난다. 최재헌 건국대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는 저서 ‘세계유산의 이론과 실재’에서 “문화유산의 가치 해석이 특정 시각만을 반영하거나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측면을 의도적으로 누락해선 안 된다”며 “민족 간 갈등과 정체성 정치, 불관용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협약 운영 지침’ 역시 등재국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방문객과 지역사회가 올바르게 이해하게끔 전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당 유산의 OUV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포용적인 해설 및 전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제119항)는 게 골자다. 국가유산청은 “현장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관계 기관과 공유한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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